토론:안동 소호헌
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중종(中宗) 때의 학자 함재(涵齋) 서해(徐嶰 1537~1559)가 서실(書室)로 쓰기 위해 명종(明宗) 때 지은 별당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별당건축으로 오른쪽 3칸은 넓은 대청이 되고 오른쪽 1칸은 누마루로 만들었다. 대청에는 ‘ㄱ’자형으로 2칸×1칸의 방이 있다. 전체의 평면은 ‘丁’자형이다. 동편 건물은 함재 서해의 아들인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의 태실(胎室)이다.
수정 국문
초고
소호헌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해(徐嶰, 1537~1559)가 살던 집이다.
서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동문수학하였다.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서해는 안동의 세도 가문인 고성이씨 이고(李股)의 딸과 혼인하였다. 장인 이고가 자기 딸과 사위를 위해 내려준 집이 소호헌이다.
이 집에 서해의 아들인 서성(徐渻, 1558~1631)의 태실이 있다. 서성은 인조대 병조판서를 지낸 문신으로 율곡 이이의 제자이다. 부친과 아들이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 이황과 이이에게 배운 보기 드문 가문이다. 서성의 아들인 서경주(徐景霌, 1579~1643)는 선조의 딸인 정신옹주와 혼인하며 부마가 되었다. 이후 서해의 일족은 크게 부흥하여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명문 벌족이 되었다.
이 건물은 앞면에 대청이 있고, 옆면에 누마루가 배치되었다. 대청 뒤로 2칸 규모의 온돌방이 붙어 있다. 기와에 새겨진 용이 새겨진 문양은 민가에서 보기 드문 특성이다. 조선 전기의 민가 양식이 남아 있는 보기 드문 건축물로, 조선 시대 민가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1차 수정
소호헌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해(徐嶰, 1537~1559)가 서재로 쓰던 별당이다.
서해는 이황(退溪 李滉, 1502~1570)의 제자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동문수학하였다. 원래 소호헌은 임청각을 지은 이명(李洺)이 다섯째 아들 이고(李股)가 분가할 때 지어준 집이었는데, 서해가 이고의 앞 못 보는 외동딸과 결혼하면서 장인 이고가 사위에게 선물로 내려주었다, 서해는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2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서해의 아내는 어린 아들 서성(徐渻, 1558~1631)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 술과 약과를 만들어 팔며 아들을 공부시켰고, 서성은 1586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소호헌은 앞쪽에 넓은 대청이 있고, 대청 뒤로는 온돌방이 붙어 있다. 대청 오른쪽에는 누마루가 있다. 지붕 모서리를 장식한 기와에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이다.
소호헌 왼쪽에 있는 건물은 서성의 태실이다. 서성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1584)의 제자로, 부친과 아들이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 이황과 이이에게 배운 보기 드문 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