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소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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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소호헌
Sohoheon House, Andong
안동 소호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소호헌
영문명칭 Sohoheon House, Andong
한자 安東 蘇湖軒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소호헌길 2 (망호리)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475호
지정(등록)일 1968년 12월 1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안동 소호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소호헌은 조선 전기 때 문신이었던 서해(徐嶰, 1537~1559)가 서재로 쓰던 별당이다. 원래 소호헌은 임청각을 지은 이명(李洺)이 다섯째 아들 이고(李股)가 분가할 때 지어준 집이었는데, 서해가 이고의 앞 못 보는 외동딸과 결혼하면서 장인 이고가 사위에게 선물로 내려주었다. 서해는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2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서해의 아내는 어린 아들 서성(徐渻, 1558~1631)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 술과 약과를 만들어 팔며 아들을 공부시켰고, 서성은 1586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소호헌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 대청이다. 앞면 1칸, 옆면 2칸은 누마루가 놓여 있다. 누마루에 붙은 대청은 ‘ㄱ’자로 꺾였는데 앞면 2칸, 옆면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붙어 ‘T’자 모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 모서리를 장식한 기와에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이다.

소호헌 왼쪽에 있는 건물은 서성의 태실(胎室)이다. 서성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1584)의 제자로, 부친과 아들이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 이황과 이이에게 배운 보기 드문 가문이다.

영문

Sohoheon House, Andong

This house was the private study of Seo Hae (1537-1559),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given to him by his father-in-law Yi Go.

Seo Hae came from a family of esteemed civil officials and studied the Confucian classics under the academic school of the renowned scholar Yi Hwang (1501-1570). Although Seo Hae demonstrated potential, he died of disease at the young age of 23. His wife Lady Yi, who was an only daughter and blind, took their young son Seo Seong (1558-1631) to Seoul where she sold liquor and snacks to help fund his education.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6 and later served as minister of military affairs and minister of taxation. Unlike his father, he followed the academic school of the renowned scholar Yi I (1536-1584). Seo Seong’s son Seo Gyeong-ju (1579-1643) married Princess Jeongsin (1582-1653), the eldest daughter of King Seonjo (r. 1567-1608). In this way, the Seo family gained prosperity and produced many talented scholars and officials.

The house is shaped like the letter T turned on its side. On the left, there is a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right, there is an elevated wooden porch in the front and an enclosed wooden-floored hall in the back. The tiles at the end of the roof are decorated with dragon designs, which is rarely seen outside of royal or religious architecture.

To the left of the house is the placenta chamber of Seo Seong. During the Joseon period, there was a custom of placing a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in a jar and burying it in an auspicious place to wish for the baby’s good fortune.

영문 해설 내용

소호헌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해(徐嶰, 1537~1559)가 서재로 쓰던 별당이다.

서해는 이황(退溪 李滉, 1502~1570)의 제자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동문수학하였다. 원래 소호헌은 임청각을 지은 이명(李洺)이 다섯째 아들 이고(李股)가 분가할 때 지어준 집이었는데, 서해가 이고의 앞 못 보는 외동딸과 결혼하면서 장인 이고가 사위에게 선물로 내려주었다, 서해는 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2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서해의 아내는 어린 아들 서성(徐渻, 1558~1631)을 데리고 서울로 떠나 술과 약과를 만들어 팔며 아들을 공부시켰고, 서성은 1586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소호헌은 앞쪽에 넓은 대청이 있고, 대청 뒤로는 온돌방이 붙어 있다. 대청 오른쪽에는 누마루가 있다. 지붕 모서리를 장식한 기와에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이다.

소호헌 왼쪽에 있는 건물은 서성의 태실이다. 서성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1584)의 제자로, 부친과 아들이 서로 다른 학설을 지닌 성리학의 대가 이황과 이이에게 배운 보기 드문 가문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