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산 동문동성당
목차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충남 서산지역 천주교 선교의 모체인 동문동 성당은 1908년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수곡본당이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초대신부는 폴리 심응영(Desideratus Polly) 신부이다.
현재의 성당은 제6대 신부인 바로(Barraux, 범 베드로) 신부가 1934년 현 위치에 토지를 매입하고, 1937년 신축, 완공하였으며 배면부는 1957년 증축하였다. 성당 내부는 중앙의 신랑(身廊)과 좌우측면의 측랑(側廊)으로 구성되는 3량식이고 신랑은 배럴볼트 천장으로, 측랑은 평천장으로 구성하여 내부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정면 주출입구 상부에는 반원아치창과 원화창을, 좌우 출입구에는 원화창만을 배치하여 위계를 두고 있다. 중앙 종탑과 현관부는 돌출시키지 않고 하나의 면처럼 처리하여 단아한 느낌을 준다.
수정 국문
초고
개항기 천주교 조선교구에 소속되어 있던 동문동 소재 성당이다. 19세기 말에 교우촌이 많았던 서산 지방의 선교를 위해 1908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수곡성당을 설립하고 초대신부 폴리(Desideratus Polly, 심응영)를 파견하였다. 1917년 10월 2일 한국인 신부 안학만이 부임하여 성당을 소길리(현 팔봉면 금학리)로 이전하고, 1919년에 다시 파견된 폴리 신부가 이듬해에 외진 곳에서 벗어나 교세를 확장하고자 음암면 심홍리로 이전하였다. 제6대 바로(P. Barraux) 신부는 성당이 지역의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1934년에 동문동 현 본당의 부지를 매입하여 1937년에 서양식 형태의 건물을 준공하였다.
구조는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네이브와 아일 부분 각각에 아치형의 출입구를 두었다. 각 아치 위에는 3개의 원형 옥스아이(oxeye) 창문을 높이의 차이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포치나 종탑 부분은 돌출되지 않은 채 하나의 평평한 입면 구조이다. 2008년부터 천주교 대전교구의 지구 조직 개편에 따라 태안·서산 지역의 대표 성당으로 이른바 ‘서산지구장좌 성당’이 되었다.
문맥요소
- 안학만 – 신부 - 일제강점기 천주교 신부이자 독립운동가. 1909년 9월 예수 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사목활동 중에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4년 4월에 사망하였다.
1차 수정
1937년에 서양식으로 지은 천주교 성당 건물이다.
동문동성당의 모체는 1908년 천주교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서산 지방의 선교를 위해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한 수곡성당이다. 초대 신부는 폴리(Desideratus Polly, 심응영)였다. 그후 1917년 안학만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소길리(현 팔봉면 금학리)로 이전하고, 1919년에 다시 파견된 폴리 신부가 이듬해 교세를 확장하고자 음암면 심홍리로 이전하였다. 현재의 성당은 제6대 신부인 바로(Barraux, 범 베드로)가 1934년 현 위치에 토지를 매입하고, 1937년에 지은 것이다. 건물의 뒷부분은 1957년 증축하였다.
교회 건물의 앞 면은 전체적으로 평면으로 구성하였으며, 종탑을 중심으로 중앙과 좌우에 세 개의 아치형 출입구를 두고 그 위에 세 개의 둥근 모양의 창문과 두 개의 아치형 창문을 설치하였다. 성당 내부는 기둥에 의해 중앙과 좌우의 세 공간으로 나뉘는데, 중앙부의 천장은 반구형, 왼쪽과 오른쪽의 천장은 평면 구조이다.
동문동성당은 2008년부터 서산지구장좌 성당으로서 태안·서산 지역의 성당을 대표하고 있다.
문맥요소
- 동문동성당
- 수곡성당
- 뮈텔 주료
- 폴리 신부
- 안학만 신부
- 바로 신부
- 네이브/신랑
- 아일/측랑
- 삼랑구조
- 지구장좌 성당
자문의견
- 건축, 근대 위원1
- “중앙부의 천장은 반구형, 왼쪽과 오른쪽의 천장은 평면 구조이다.”-> “중앙부의 천장은 높고 둥글며, 좌우의 천장은 평평하게 구성되었다.”
- 건축, 근대 위원2
- 문화재 명칭에 적합하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전문적이고 정확한 의미전달이 필요한 외국어는 ( )안에 영어나 한자를 기입할 필요가 있음
- 폴리신부에 대한 표기는 상홍리공소와 같이 표기될 필요가 있음
- 문화재 가치 및 의미 서술이 적절함.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성당의 증개축 역사에 주안점은 둔 안내문으로, 건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보가 강화됐으면 합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경우, 이 건물의 가치를 느끼기 힘들어 보입니다. 특히 구조설명은 보이는 형태를 글로 적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건물의 가치와 구조, 형태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수 있도록 해줬으면 합니다.
- “서산 지방”보다는 ‘서산 지역’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합니다.
2차 수정
1937년에 서양식으로 지은 천주교 성당 건물이다.
동문동성당의 모체는 1908년 천주교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Gustave-Charles-Marie Mutel, 1854~1933)가 서산 지역의 선교를 위해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한 수곡성당이다. 초대 신부는 폴리(Desideratus Polly, 1884~1950)였다. 그후 1917년 안학만 신부(1889~1944)가 부임하여 성당을 소길리(현 팔봉면 금학리)로 이전하고, 1919년에 다시 파견된 폴리 신부가 이듬해 교세를 확장하고자 음암면 심홍리로 이전하였다. 현재의 성당은 제6대 신부인 바로(Pierre Barraux, 1903~1946)가 1934년 현 위치에 토지를 매입하고, 1937년에 지은 것이다. 건물의 뒷부분은 1957년 증축하였다.
교회 건물의 앞 면은 전체적으로 평면으로 구성하였으며, 종탑을 중심으로 중앙과 좌우에 세 개의 아치형 출입구를 두고 그 위에 세 개의 둥근 모양의 창문과 두 개의 아치형 창문을 설치하였다. 성당 내부는 기둥에 의해 중앙과 좌우의 세 공간으로 나뉘는데, 중앙부의 천장은 높고 둥글며, 좌우의 천장은 평평하게 구성되었다.
동문동성당은 2008년부터 서산지구장좌 성당으로서 태안·서산 지역의 성당을 대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