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묵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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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안동김씨들이 여러 대에 걸쳐서 살아온 집이지만 언제 누가 지었는지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사당채의 암막새 기와 내림새 면에 조각된 ‘정덕(正德)10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사당은 1516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소요산(素耀山) 기슭에 터를 잡아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본채의 평면이 옛 가옥 형태에서 많이 나타나는 ‘H’자형이며, 그 앞에 ‘一’자 행랑채가 놓여져 튼‘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특히 본채에 사랑 부분이 포함된 평면구성은 본 고택이 이 같은 유형의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3량가의 간소한 집이지만 동자기둥의 윗 부분을 빗 깎고 그 위에 소로와 장여를 싸서 바친 안대청 상부의 대공은 주택 건축에서 보기 드문 수법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안동 김씨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온 살림집이다. 집의 이름은 안동에 김씨 가문의 터전을 다졌던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의 양아들 김종윤(金宗胤)의 호를 딴 것이다.

이 집이 누구에 의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와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사당은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은 H자형의 본채, 본채 앞에 있는 행랑채, 오른쪽 언덕 위에 자리한 사당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 아래의 초가 건물은 근대에 세운 사당채이다.

사랑 공간이 포함된 본채의 구조, 좁은 통로를 두고 사랑방 뒤쪽에 도장방을 배치한 공간배치 방식, 행랑채의 구성 등을 볼 때 이 집은 마을에 있는 여러 고택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채의 부엌과 대청 천장의 마감 방식 역시 주택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수법으로, 이 집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당 아래쪽에 있는 초가 건물은 근대에 세워진 사당채이다. -> 안동 관광 홈페이지 내용 / 언제,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정보는 검색 안됨.
*행랑채 지붕의 현재 형태 확인 필요(2015년 촬영 기준 초가지붕을 올린 것으로 보이나, 최근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고, 초가지붕으로 보수한 시점도 검색이 불가능함.)

  • 집의 이름은 청백리로 유명했던 김계행(1431-1517)의 대를 이은 김종윤의 호를 따서 지었다. 김계행은 이 마을의 안동 김씨 임향조 김삼근의 둘째 아들이다.
  • 행랑채를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기단을 높여 지은 본채 건물이 보인다. 중앙부의 왼쪽에는 안방이, 오른쪽에는 마루(안대청)가 있다. 왼쪽 날개채에 부엌과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건물 외부를 향해 툇마루를 시설한 사랑 공간과, 그 뒤에 배치한 도장방 등이 있다.
  • 이 집의 서쪽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바로 인접해 있는 가옥은 김삼근의 옛집이다.

1차 수정

묵재고택은 안동김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묵재고택이 있는 소산마을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삼근(金三近, 1390~1465)이 이주한 후 안동김씨 후손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집의 이름은 김삼근의 둘째 아들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의 양아들인 김종윤(金宗胤)의 호를 딴 것이다.

집은 ‘H’자형 본채와 ‘一’자형 행랑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 오른쪽 언덕 위에 위치한 사당은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채는 안방과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날개채에는 부엌과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 날개채에는 도장방과 사랑방이 있다. 본채에 사랑방을 두고 사랑방 뒤쪽에 도장방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보아, 이 집은 마을에 있는 여러 고택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 기존 문안과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는 사당 기와에 새겨진 ‘정덕10년(正德十年)’이라는 기록이 언급되어 있는데, 정덕10년은 1515년임. 기와의 연호명 관련 내용은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