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여 선생 묘 및 신도비
이경여 선생 묘 및 신도비 Tomb and Stele of Yi Gyeong-y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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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이경여 선생 묘 및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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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and Stele of Yi Gyeong-yeo |
한자 | 李敬輿 先生 墓 및 神道碑 |
주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31-3 |
지정(등록) 종목 | 포천시 향토유적 제8호 |
지정(등록)일 | 1986년 4월 9일 |
소유자 |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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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조선 중기 문신 이경여(李敬輿, 1588~1657)의 묘소와 신도비이다. 신도비란 죽은 사람의 평생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가에 세워두는 비이다.
이경여는 세종(1418~1450 재위)의 7대손이다. 과거급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는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다. 명나라를 높이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을 고수한 그는 인조 20년(1642)과 22년(1644)에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명나라와 친하다는 이유로 청나라로 잡혀가 억류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소현세자빈 강씨의 사사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다. 효종 즉위 후 풀려나 영의정이 되었으나 청의 압력으로 곧 물러났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가 뛰어났으며 저서로 『백강집(白江集)』이 있다.
신도비는 건립 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1678년 이후로 보인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짓고, 글씨는 심익현(沈益顯, 1641~1683)이 썼으며,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전서체로 제액(題額)*을 썼다.
- 제액(題額): 비석의 상단부에 새긴 비의 명칭.
영문
Tomb and Stele of Yi Gyeong-yeo
This is the tomb and stele of Yi Gyeong-yeo (1588-1657),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i Gyeong-yeo was the 7th-generation descendant of King Sejong (r. 1418-1450).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609, he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nd escorted King Injo (r. 1623-1649) to refuge at Namhansanseong Fortress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6. In 1642 and 1644, he was captured in Qing China for remaining loyal to the Ming dynasty, refusing the adoption of the Qing calendar. When he returned to Korea, his life was still in turmoil. He was sent to exile for refusing the royal command to execute the crown princess, was later appointed as prime minister when a new king was enthroned, but had to resign due to pressure from Qing.
The stele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after 1678. The epitaph was composed by Song Si-yeol (1607-1689), calligraphed by Sim Ik-hyeon (1641-1683), and the title was calligraphed by Kim Man-jung (1637-1683), who were all renowned high-ranking offic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