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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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and Excavated Relics of Seonchalsa Temple, Andong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영문명칭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and Excavated Relics of Seonchalsa Temple, Andong
한자 安東 仙刹寺 木造釋迦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웃장터길 91-71
지정(등록) 종목 보물
지정(등록)일 2023년 12월 26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선찰사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선찰사
시대 1622년(조선 광해군 14)
수량/면적 불상 1구, 조성발원문 1점, 묵서편 1점, 저고리 1점, 후령통 일괄 5점
웹사이트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선찰사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좌상은 광해군 14년(1622) 광해군의 왕비인 유씨가 발원하여 만든 11구의 불상 중 하나이다. 이 불상들은 왕실 가족의 무병장수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들과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유씨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현진(玄眞)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승려 장인 17명이 대거 참여하여 제작되었다. 이때 제작된 불상들은 원래 도성과 경기 지역의 왕실 원찰(願刹)*에 나누어 모셨는데, 이 석가여래좌상이 선찰사로 옮겨진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높이 42cm의 이 불상은 3등신의 신체 비례를 갖고 있으며 뺨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 전체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인상이다. 유씨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자식의 생전 모습을 반영한 불상을 주문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 다부진 체구, 진중한 이목구비의 표현, 오른쪽 어깨에 강조한 옷주름의 표현 등에서는 현진 특유의 불상 양식이 드러난다.

2015년 불상 안에서 조성발원문, 묵서편, 저고리, 후령통(喉鈴筒)**, 다라니***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저고리에는 ‘병자생왕비유씨명의(丙子生王妃柳氏命衣)’라는 묵서가 있어 왕비가 직접 입었던 옷임을 알 수 있다. 저고리는 뛰어난 직조 기술을 보일 뿐 아니라 네 종류의 꽃과 봉황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왕실 복식의 품격을 잘 보여준다. 17세기 조선 왕실의 복식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사례이며, 나머지 유물들도 조선 왕실이 불상 조성을 후원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왕실 원찰(願刹):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에서 세운 사찰
  • 후령통(喉鈴筒): 유물 가운데 복장(服藏)을 넣는 통
  • 다라니: 지혜나 삼매 또는 산스크리트어 음을 번역 없이 외는 진언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

영문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and Excavated Relics of Seonchalsa Temple, Andong

This wooden statue of Sakyamuni Buddha enshrined in Daeungjeon Hall is one of 11 statues made in 1622 as an offering from Lady Yu (1576-1623), the consort of later deposed King Gwanghaegun (r. 1608-1623)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Created by 17 of the most skilled monk artisans of the time including Hyeonjin, the statues were meant to embody Lady Yu’s wish for the health and longevity of the royal family and the rebirth of her late parents’ and descendants into the Western paradise. The 11 statues were originally distributed to the royal family’s temples in the capital and the Gyeonggi region. It is unknown when and why this particular statue was moved to Seonchalsa Temple.

Measuring 42 cm in height, the Buddha’s head is large in proportion to his body and his plump cheeks are akin to a small child. It is thought that Lady Yu requested the statue to resemble her kids, who died at a young age. Other elements, such as the stocky body, the solemn facial features, and the accentuated folds on the clothing around the right shoulder, are characteristic of Hyeonjin’s unique style.

During the examination of the statue in 2015, several relics were discovered enshrined inside, including a written vow, a calligraphed paper strip, a jacket, a container of votive objects, and Buddhist incantations (dharani). Notably, the jacket features calligraphy indicating that it was worn by Lady Yu herself. The jacket demonstrates a high level of weaving craftsmanship and is decorated with phoenix designs and four types of floral designs. It is a valuable example of the elegant royal court clothing of the 17th century preserved in a complete state. The remaining relics provide crucial evidence of the royal court’s involvement in the creation of Buddhist statues.

영문 해설 내용

대웅전에 모셔진 이 목조석가여래좌상은 1622년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의 왕비 유씨(1576-1623)가 발원하여 만든 11구의 불상 중 하나이다. 현진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승려 장인 17명이 참여하여 제작된 이 불상들은 왕실 가족의 무병장수와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와 자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유씨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 11구의 불상은 원래 도성과 경기 지역의 왕실 원찰에 나누어 모셔졌으나, 이 석가여래좌상이 선찰사로 옮겨진 시기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불상은 높이 42cm로,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통통한 뺨이 어린아이와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왕비가 일찍 세상을 떠난 자녀들의 모습을 반영하도록 주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부진 체구, 진중한 얼굴 표현, 오른쪽 어깨에 강조된 옷주름 등에서 현진 특유의 불상 양식이 잘 드러난다.

2015년 이 불상을 조사하던 중 불상 내부에서 조성발원문, 묵서편, 저고리, 후령통, 다라니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저고리의 묵서를 통해 이 옷이 왕비가 직접 입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저고리는 뛰어난 직조 기술을 보여주며, 네 종류의 꽃과 봉황 문양으로 장식되어 17세기 왕실 복식의 품격을 잘 나타낸다. 이처럼 조선 왕실의 복식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사례이며, 나머지 유물들도 왕실이 불상 조성을 후원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