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향교
| 서천향교 Seocheo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
| 대표명칭 | 서천향교 |
|---|---|
| 영문명칭 | Seocheo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 한자 | 舒川鄕校 |
|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서천향교길 53-5 (군사리)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23일 |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 시대 | 조선시대 |
| 수량/면적 | 896㎡ |
| 웹사이트 | 서천향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서천향교는 조선시대 나라에서 각 고을(군현)에 세운 국립 교육기관으로 성현의 제사와 유학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서천향교는 756년(경덕왕 15)에 문장리 향교골에 세워졌다는 전설이 있고, 이후 고려말인 1314년(충숙왕 1)에 서림이 서주로 승격하면서 서부면 동조리로 이건하였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1481)에는 관아 남쪽 10리에 위치한다고 기록하고 있고, 1549년경(명종 4)에 동문외리 남쪽으로 옮겼고, 정유재란(1597)으로 소실된 향교를 진사 이유(李瑜)와 유림들의 상서(上書)로 1599년(선조 32)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고종 때인 1886년 충청관찰사 심상훈이 강학전으로 나누어 준 500냥을 서천향교 흥학 재원으로 삼았고 크게 고쳐 지었다. 서천향교의 교생은 50명 정원에 양인 신분이면 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서원이 발달하며, 향교에서 교육의 기능이 약화되고,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중단되었지만, 지금도 봄가을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천향교는 구릉지에 입지하고 정남향을 바라보며, 건물의 배치는 교육 공간의 명륜당(明倫堂)을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 좌우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가 있고, 강당인 명륜당 좌우에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 동·서무에는 송조2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향교의 외삼문 앞에 홍살문(紅箭門)과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하마비는 마을 앞에 있던 것을 옮겨둔 것이다. 하마비에는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라고 새겨져 있다. ‘하마’는 향교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 들어오라는 의미이다.
- 5성: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 송조2현: 정호, 주희
- 우리나라 18현: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영문
Seocheo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A local Confucian school, called hyanggyo in Korean, is a public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Such schools were established in jurisdictions across the country to serve as a local shrine for Confucius and to promote Confucian education and nurture local elites. Students learned about poetry composition,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y.
Seocheon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was first established in 756 and was later relocated in 1314. According to records compiled in the 15th century, it once stood about 4 kilometers south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Around 1549, the school was moved again, but it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In 1599, at the suggestion of the local Confucian community, it was rebuilt at its present site. The complex underwent major renovation in 1886 with financial support from Sim Sang-hun, the then governor of Chungcheong-do Province. At that time, the school accommodated up to fifty students.
Situated on sloping ground and facing due south, the school complex consists, from front to back, of a main gate, a lecture hall called Myeongnyundang, two dormitories, an inner gate, two auxiliary shrines, and a shrine called Daeseongjeon. In front of the main gate is a dismounting post, which was originally placed at the entrance of the village and later moved here. It was installed to remind all who pass by to dismount from their horses as a sign of utmost propriety. Daeseongjeon Shrine houses the spirit tablets of five sages of China, while the auxiliary shrines house those of two Chinese scholars and eighteen Korean scholars. Veneration rituals are held here every spring and autumn.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국립교육기관이다. 이러한 향교들은 전국 각 지역에 설립되어 공자를 모시는 지역 사당의 역할을 하며, 유학을 교육하고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학생들은 시를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배웠다.
서천향교는 756년에 처음 세워졌고, 이후 1314년에 한차례 이건하였다고 전한다. 15세기에 편찬된 자료에 따르면 관아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1549년 무렵에 한번 더 이건하였다가,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으며, 이후 지역 유림들의 건의로 159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1886년 충청도 관찰사 심상훈이 자금을 지원하여 향교를 크게 고쳐 지었다. 당시 서천향교의 학생은 50명이 정원이었다고 한다.
구릉지에 정남향으로 자리한 서천향교는 앞쪽에서부터 정문, 강당인 명륜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내삼문, 동무와 서무, 사당인 대성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 앞의 하마비는 원래 마을 입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예를 갖추는 의미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의미로 세운 것이다. 대성전에는 중국의 오성, 동무와 서무에는 중국의 2현과 한국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