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충의영당 및 춘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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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영당 및 춘산사
Chunguiyeongdang Shrine and Chunsansa Shrine
대표명칭 충의영당 및 춘산사
영문명칭 Chunguiyeongdang Shrine and Chunsansa Shrine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부곡리 249
지정(등록) 종목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웹사이트 충의영당 및 춘산사, 현충시설정보서비스, 국가보훈부.



해설문

국문

  • 건립취지

애국지사 문달환(1852~193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 관련내용

둔재(遯齋) 문달환(文達煥)의 본은 남평(南平)이며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태어난 일제감정기의 항일운동가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득점되고 대한제국의 국권이 강탈당하자 1906년 최익현의 휘하에서 순창 및 태인 지역에서 활동한 12명의 의사(義士) 중 1인이었다.

1906년 3월 전북 태인에 있는 돈헌 임병찬과 연합하여 의병운동의 거점을 태인 순창일대로 정하였다. 이때 문달환도 면암 최익현 의진에 합류하였다. 면암 의진은 일본 정부에 글을 보내 침략주의 일본의 16개 죄목을 들어 성토하고 정읍, 순창, 곡성 등지로 진군하였는데 이때 병력이 300여명에 이르렀으며 1906년 6월 19일 옥과로 향하면 중 적군의 공격을 받아 순창으로 회군하였고 군사들이 흩어졌으나 문달환은 문인 12인과 함께 면암을 호위한 채 진중에 그대로 앉아 적을 꾸짖다가 잡혀 서울로 호송되었다. 이후 재판을 받아 태형 100도에 처해지고 약 2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일본 대마도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으로 다리가 불편하게 되자, 1906년 8월 석방되어 여생을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06년 12월 최익현이 일본 대마도로 유배가서 단식 순절하자 부산까지 나아가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하였다.

문달환은 1911년 채용신이 그린 스승인 최익현의 초상을 받아 1927년 화순 춘산영당을 짓고 봉안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춘산사에는 현재 도 지정 유형 문화재인 문달환 초상화와 최익현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초상화는 전신상본 2점과 반신상본 1점, 모두 3점이 전해진다. 3점 모두 당시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던 어용화사인 채용신(1850~1941)이 1911년에 그린 작품이다. 2011년 12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상화를 그린 채용신은 을사조약 이후 1914년까지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항일 의사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이 작품도 채용신이 떠돌 때 화순군에 와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최익현의 초상과 함께 고초를 겪은 제자의 초상도 같이 그려 주었음이 확실하다. 특이한 것은 문달환의 전신상본음 두 점이나 그린 점이다.

원본은 별도 보관 중이며 현재 봉안된 초상은 복사본이다.

영문

Chunguiyeongdang Shrine and Chunsansa Shrine, Hwasun

These two shrines commemorate Mun Dal-hwan (1852-1938),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from Hwasun, and his teacher Choe Ik-hyeon (1833-1906). Chunsansa Shrine houses the spirit tablet of Mun Dal-hwan, while Chunguiyeongdang Shrine houses three portraits of Mun Dal-hwan and one portrait of Choe Ik-hyeon. These portraits were collectively designated as a Jeolla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2011. The originals were moved to special storage for safekeeping, and the paintings currently on display are replicas.

  • The Righteous Contributions of Mun Dal-hwan and Choe Ik-hyeon

Upon the illegal conclusion of the Japan-Korea Treaty of 1905, Korea was forced to become a protectorate of Japan and lost its sovereignty. The following year, Choe Ik-hyeon mobilized a civilian army around today’s Jeongeup area. The civilian army, which comprised about 300 people, had advanced through the Jeongeup, Sunchang, and Gokseong areas. However, as the army was outnumbered by the Japanese military police both in terms of troops and weapons, continued attacks led the army to disband only three months into their campaign. However, 12 righteous heroes, including Mun Dal-hwan, stood alongside Choe Ik-hyeon to the end and were arrested and sent to Seoul. Mun Dal-hwan was imprisoned for about two months and taken to Tsushima Island where he was tortured severely before being released. Choe Ik-hyeon was exiled to Tsushima Island where he went on a hunger strike and died. The Korean Government posthumously honored both men with Orders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Choe Ik-hyeon with the Republic of Korea Medal (1st grade order) in 1962 and Mun Dal-hwan with the National Medal (5th grade order) in 1990.

  • About the Portraits

The portraits of Choe Ik-hyeon and Mun Dal-hwan were painted in 1911 by Chae Yong-sin (1850-1941), a royal court painter known for having painted the portrait of King Gojong (r. 1863-1907). Following Japan-Korea Treaty of 1905, he retired to the Jeolla-do region where he painted many portraits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ctivists, Confucian scholars, and their wives. Through the joint creation of their portraits, the teacher Choe Ik-hyeon could symbolically have by his side the disciple Mun Dal-hwan with whom he endured many hardships.

영문 해설 내용

충의영당과 춘산사는 화순 출신의 항일운동가인 문달환(1852-1938)과 그의 스승인 최익현(1833-1906)을 기리는 곳이다. 춘산사에는 문달환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충의영당에는 문달환의 초상화 3점과 최익현의 초상화 1점이 봉안되어 있다. 이 초상화들은 모두 201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본은 별도 보관 중이며 현재 봉안된 초상은 복사본이다.

  • 문달환과 최익현의 의로운 업적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국권이 강탈당하자, 1906년 최익현은 지금의 정읍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최익현의 의병군은 300여 명에 달했고, 정읍, 순창, 곡성 등으로 진군하였으나 병력과 무기 등의 열세로 오래 유지되지는 못하였다. 의병을 결성한지 불과 3개월만에 적군의 공격을 받아 의병들이 모두 흩어졌다. 그러나 문달환을 포함한 12인의 의사(義士)들은 최익현을 끝까지 호위하였고, 일제 군경에 체포된 뒤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후 문달환은 약 2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고, 대마도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은 후 석방되었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유배되어 단식으로 저항하다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두 사람의 공훈을 기려 최익현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문달환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초상화 정보

최익현과 문달환의 초상화는 모두 1911년 채용신(1850-1941)이 그린 것이다. 채용신은 원래 고종(재위 1863-1907)의 어진을 그린 왕실 화사였다. 그러나 을사조약 이후에는 전라도 지역에 머물면서 항일운동가, 유학자, 부인들의 초상화를 다수 그렸다. 두 인물의 초상화가 함께 제작됨으로써, 스승 최익현은 험난한 시기를 함께 견뎌낸 제자 문달환을 상징적으로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