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최경회 사당
| 최경회사당 Shrine of Choe Gyeong-ho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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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회 사당,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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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최경회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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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hrine of Choe Gyeong-hoe |
| 한자 | 崔慶會祠堂 |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206-2 |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1984년 2월 29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 수량/면적 | 1동 |
| 웹사이트 | 최경회 사당,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최경회 사당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최경회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순조 35년(1833)에 한천면 금전리에 세웠으나, 그곳이 저수지 공사로 물에 잠기게 되어 196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최경회 장군은 화순 출신으로, 명종 16년(1561)에 진사가 되었고, 선조 원년(1567)에 문과에 급제한 후 장수·무장의 현감과 영해부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에 맞서 싸웠으며, 그 공로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하였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김천일과 더불어 9일 밤낮으로 격렬하게 싸우다 순절하였다.
인조 5년(1627)에 좌찬성에 추증(죽은 뒤 벼슬을 높여 줌)되었고, 인조 11년(1633)에 충의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최경회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영문
Shrine of Choe Gyeong-hoe
This shrine commemorates Choe Gyeong-hoe (1532-1593), a civil official and civilian army leader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originally built in 1833 in Geumjeon-ri, Hancheon-myeon, but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63 due to the construction of a reservoir. It measures three bays in width by two bays in depth and has a gable roof.
Born in Hwasun, Choe Gyeong-ho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67 and served as the magistrate of Mujang (today’s Gochang) and Yeonghae (today’s Yeongdeok). When the Japanese invaded Korea in 1592, he mobilized a civilian army and contributed to the victories at several battles in the Jeolla-do area, for which he was promoted to the post of army commander of West Gyeongsang-do Province. During the Battle of Jinjuseong Fortress in 1593, he fought against the Japanese for nine days and nights, but was unable to stop the enemy. Lamenting this, he jumped into the Namgang River and died. He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left associate state councilor in 1627 and granted the title of Lord of Loyal Determination (忠毅) in 1633.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최경회(1532-1593)를 기리는 사당이다. 원래는 1833년 한천면 금전리에 세워졌으나, 1963년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맞배지붕을 올렸다.
최경회는 화순 출신으로, 1567년 문과에 급제한 후 무장현(지금의 고창 지역) 현감과 영해(지금의 영덕 지역) 부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전라도 지역에서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 공으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9일 밤낮을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역부족이었고, 적을 막지 못한 것에 통탄하며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1627년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1633년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