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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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
Stele of Jo Gwang-jo, Hwasun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화순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
영문명칭 Stele of Jo Gwang-jo, Hwasun
한자 和順靜菴趙光朝先生謫廬遺墟碑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1979년 8월 3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적려유허비는 유배지에서의 자취를 적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운 비를 말한다.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인해 능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사사된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조광조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중종을 왕위에 오르도록 도운 공신들의 거짓 공로를 삭제하는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개혁을 반대한 훈구파의 모함을 받아 중종 14년(1519)에 능주면 남정리로 유배되었고, 유배된 지 한 달 만에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였다.

현종 8년(1667)에 능주 목사 민여로가 송시열로부터 비문을 받아 유허비를 세웠다.

영문

Stele of Jo Gwang-jo, Hwasun

This stele was erected in 1667 to commemorate Jo Gwang-jo (1482-1519), a Confucian scholar and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o was exiled to Namjeong-ri Village. Its inscription was composed by the renowned scholar Song Si-yeol (1607-1689).

Jo Gwang-jo criticized corrupt officials and pursued radical reformation of the faulty government system. In particular, he reviewed the actions of individuals who had received titles and land for contributing to the dethronement of the tyrannical ruler King Yeonsangun (r. 1494-1506) and found that some of them had been given the awards under false pretenses. Jo had these awards revoked, which created many political enemies. As a result, Jo was falsely accused of treason and exiled to Namjeong-ri where he was forced to commit suicide by poison less than a month later.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조광조(1482-1519)가 남정리에 유배되었던 것을 기록하기 위해 1667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저명한 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지었다.

조광조는 부패한 관리들을 질타하고 잘못된 제도를 없애는 등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특히 폭군 연산군(재위 1494-1506)을 몰아내는 데 기여한 공신들의 행적을 검토하였고, 일부가 허위로 상을 받았음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이들에게 주어진 토지 등을 몰수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정적들이 생겨났다. 결국 조광조는 역모를 꾀한다는 누명을 쓰고 남정리에 유배되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