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문달환 초상
| 화순 문달환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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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화순 문달환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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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和順 文達煥 肖像 |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부곡리 249번지 춘산영당 |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
| 지정(등록)일 | 2011년 12월 20일 |
| 분류 |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
| 시대 | 일제강점기 |
| 수량/면적 | 3점 |
| 웹사이트 | 화순 문달환 초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둔재 문달환의 초상화 3점은 1911년 4월에 석지 채용신이 그린 작품이다.
전신상은 비단에 채색한 작품으로 둔재는 정면을 향하고 있다. 검은색 연속 문양이 장식된 화문석 위에 앉아 도포 자락에 가려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복건을 높이 쓴 얼굴은 황토색으로 처리하고, 인자한 눈과 가만히 다문 입을 표현하여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이다. 얼굴의 세세한 주름과 수염을 정밀하게 묘사하여 실제 인물을 대하는 느낌을 준다. 전신상 2점은 거의 동일한 작품이다.
반신상은 장지에 채색한 작품으로 크기가 작을 뿐 복건을 쓴 정면상의 모습이나 의습의 표현, 얼굴 묘사가 전신상과 흡사하다. 세 작품 모두 채용신 작품에서 보이는 사실적인 외형 표현과 대상 인물의 성정을 잘 드러내는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문달환(1852~1938)은 본관이 남평으로 면암 최익현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강탈당하자 1906년 4월에 태인 무성서원에서 면암 최익현이 의병을 모집할 때 임병찬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문달환은 일본 대마도까지 끌려가 가혹한 고문으로 다리가 불편해져 일생을 두문불출하고 강도(講道)에 힘썼다. 순창 12의사의 한 사람으로, 1990년 대통령 표창 애족장이 추서(追敍)되었다.
채용신은 근대에 활동한 화가이지만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작품들은 당시 상황을 잘 드러내는 인물들을 소재로 하였다. 문달환 초상화는 전신상 2점과 반신상 1점이 현존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며, 함께 항일 운동에 참여했던 스승 면암 최익현의 초상화와 함께 제작되어 전래한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원본은 전남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서 보관·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