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독상리 석등
| 독상리석등 Stone Lantern in Doksang-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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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상리 석등,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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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독상리석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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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tone Lantern in Doksang-ri |
| 한자 | 獨上里石燈 |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석등길 1 (독상리) |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1984년 2월 29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
| 수량/면적 | 1기 |
| 웹사이트 | 독상리 석등,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독상리 석등은 고려 고종 37년(1250)에 동복 오씨의 중시조인 오대승이 제작한 석등이다. 사찰이나 묘역 앞에 세우는 일반적인 석등과 달리, 독상리 석등은 거대한 바위에 48개(실제 개수는 54개)의 구멍을 파서 만든 독특한 형태이다. 48개의 석등은 불교의 48서원과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승은 밤마다 각각의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밝혀, 국태민안과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예를 올렸다. 이후 나라가 평안하고 자손들이 대대로 벼슬길에 올라, 석등이 위치한 모후산 자락을 '정승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독상리 석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며, 조선 현종 11년(1670) 오씨 문중에서 세운 ‘석등사적비기’에도 남아 있다.
석등은 겹처마 팔작지붕 아래 홍살문을 두른 비각에 보존되어 있으며, 매년 동복 오씨 자손들이 이 석등에 불을 밝히고 48서원문을 낭송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문
Stone Lantern in Doksang-ri
This stone lantern is said to have been made in 1250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by the civil official O Dae-seung to perform nightly rites to heaven wishing for peace for the country and prosperity for his descendants. It is located in Doksang-ri Village, which has been home to the Dongbok O clan since the clan’s patriarch O Hyeon-jwa settled in the area circa 1220. O Dae-seung, a great-grandson of the patriarch,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260 and went on to serve as prime minister, the highest government office. Possibly due to his ritual efforts, the clan’s descendants prospered and produced many civil official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o this day, the clan’s descendants continue to perform annual rituals at this stone lantern.
Unlike typical Korean stone lanterns found at Buddhist temples or cemeteries, which consist of an octagonal pillar, a body stone, and a roof stone, this lantern was made by carving 54 holes into a large rock. It is presumed to have been lit by inserting wicks and pouring oil into the holes. It is housed in a pavilion with a hip-and-gable roof and double-tiered eaves.
영문 해설 내용
이 석등은 고려 말의 문신 오대승이 밤마다 하늘에 나라의 평안과 자손의 창성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1250년에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석등이 위치한 독상리에는 1220년 무렵 동복오씨 오현좌가 처음 정착한 이후 동복오씨 후손들이 대대로 모여 살고 있다. 오대승은 오현좌의 증손자로, 1260년 과거에 급제하여 최고위 관직인 문하시중을 지냈다. 그의 기원 덕분인지, 동복오씨 가문의 자손들도 번창하여 대대로 벼슬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동복오씨 후손들은 이 석등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찰이나 묘역 앞에 세워지는 일반적인 한국의 석등은 팔각형의 기둥 위에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 석등은 큰 돌에 54개의 구멍을 파서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넣어 불을 켰던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보호각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