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오산리 석불입상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 Stone Standing Buddha in Osan-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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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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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Standing Buddha in Osan-ri |
주소 |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08 |
지정(등록) 종목 | 화성시 향토문화유산 |
지정(등록)일 | 2019년 10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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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21
오산리 석불 입상은 동탄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져 있었던 자라매산 아래에 있었다. 동탄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이 석불은 머리에 둥근 모자 같은 보개(寶蓋)를 착용하였으며 얼굴은 긴 타원형이다. 이마 중앙에는 광명을 상징하는 백호가 크게 조각되어 있으며 목에는 불상에서 주로 보이는 주름인 삼도가 있다. 그리고 두 손은 연꽃 봉오리로 알려진 지물을 잡고 있다. 두 손으로 지물을 잡고 있는 불상은 조선 전기의 불상에서 주로 확인된다. 오산리 석불 입상이 입고 있는 옷은 일반적인 불상의 옷이 아니라 마치 왕릉이나 사대부 묘 앞의 문석인이 입는 옷 모양과 같다. 이러한 모습의 불상이 제작된 이유는 왕릉이나 사대부 묘 석상을 조성한 장인들이 불상 제작에 참여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오산리 석불 입상의 팔 아래 옷 주름은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이러한 형태의 옷 주름이 유행한 시기는 왕릉 문석인의 크기가 대형화되기 이전인 15세기 후반경이다. 또한 이 석불이 착용하고 있는 폭이 두껍고 지름이 짧은 원형 보개의 경우 주로 15세기 불상에서 유행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하여 오산리 석불 입상은 15세기 후반경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성 오산리 석불 입상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용인시 기흥구 마북리에도 무덤 앞 석인상과 비슷한 형태의 조선 전기 석불 입상이 있다. 화성 오산리 석불 입상과 마북리 석불 입상은 모두 교통로에 서 있었다. 이 석불들은 행인들이 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이정표 역할도 하였다. 이처럼 화성 오산리 석불 입상은 조선 전기 불교 신앙의 형태와 교통로의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2024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은 동탄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야산에 있었던 불상이다. 동탄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석불을 보존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이 석불은 머리에 두껍고 둥근 모자를 쓰고 있다. 얼굴은 긴 타원형이며, 이마 중앙에는 광명을 상징하는 원형의 백호가 크게 조각되어 있다. 오산리 석불입상의 복식은 일반적인 불상의 옷이 아니라 마치 왕릉이나 사대부 묘 앞에 있는 문인석의 옷과 같은 형태이다. 원형의 모자를 착용하고 문인석과 유사한 복식을 입은 석불은 주로 15세기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의 모습이며,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물건은 연꽂 봉오리로 알려져 있다.
오산리 석불입상과 유사한 형태의 조선 시대 석불입상은 용인 마북동 석불입상과 평택 정토사 석불입상이 있다. 마북동 석불입상은 조선 시대 용인이 용구현으로 불리던 시절에 용구현청이 있던 곳에 세워졌으며, 정토사 석불입상은 조선 시대 삼남길 부근에 설치된 소사원(素沙院)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은 본래 오산원(鼇山院)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지역은 용인과 평택에 있는 두 석불입상과 같이 15세기 주요 교통로의 거점 지역이다. 이 석불은 행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이정표의 역할도 하였다. 이처럼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은 조선 전기 불교문화의 모습과 교통로의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영문
Stone Standing Buddha in Osan-ri, Hwaseong
2021
This statue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late 15th century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was originally located by the roadside at the foot of Jaramaesan Mountain about 300 m to the west of Dongtan Elementary School. It is thought that the statue was placed in the outdoors to serve as both a signpost and as an object of folk worship to which locals and passersby prayed for their wellbeing.
The buddha is depicted wearing a thick, disk-shaped headdress, which was a popular characteristic of 15th-century Buddhist statues in Korea. His face is oval in shape and is particularly long. The jewel-like spot carved between his eyebrows is a tuft of white hair which symbolizes his mercy shining out to the world, and the three creases on his neck and upper chest represent the “three destinies” of afflictions, actions, and suffering. He holds an object in his hands that is presumed to be a lotus bud. His clothing differs from typical Buddhist robes and is reminiscent of clothing seen on the statues of civil officials that were placed in front of the tombs of the royal family and the ruling class. This suggests that this statue could have been made by artisans specializing in tomb sculpture. The folds of the clothes are expressed in an elegant and natural manner, which was a popular style in the late 15th century.
2024
This stone statue depicting a standing buddha is presumed to date to the 15th century. It was originally located on a small mountain about 350 m to the southwest of Dongtan Elementary School, along what is known to have been a major transportation route at the time. Thus, it is thought that the statue was made to serve as a signpost and an object of worship for travelers wishing for a safe journey, as was a common practice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statue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due to urban development.
The standing buddha is depicted wearing a thick, disk-shaped headdress and robes that resemble the ceremonial attire of a civil official. This style, similar to the civil official statues found in front of the tombs of the royal family and the ruling class, was produced mostly in the 15th century. The buddha has a long, oval face and a jewel-like spot carved between his eyebrows, which is a tuft of white hair symbolizing his mercy shining out to the world. The object in the Buddha’s hands is said to be a lotus bud.
영문 해설 내용
2021
이 불상은 조선시대인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동탄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던 자라매산 기슭의 교통로에 서 있었다. 이정표의 역할도 했던 것으로 여겨지며, 행인들이 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석불의 머리 위에는 폭이 두껍고 지름이 짧은 둥근 모자 모양의 보개(寶蓋)가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15세기 불상에서 유행한 특징이다. 얼굴은 긴 타원형이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에 새겨진 삼도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연꽃 봉오리로 추정되는 지물을 잡고 있다. 옷은 일반적인 불상의 옷이 아니라 마치 왕릉이나 사대부 묘에 세워지는 문인석의 옷 모양과 같다. 이러한 모습의 불상이 제작된 이유는 왕릉이나 사대부 묘 석상을 조성한 장인들이 불상 제작에 참여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옷주름은 유려하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옷주름은 주로 15세기 후반에 유행하였다.
- 현재 동탄복합문화센터 야외에 있지만 조만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므로, 현 위치에 대한 내용은 쓰지 않기로 함.
- 2000년대 들어 동탄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현재 위치인 동탄복합문화센터 야외로 이전하였다. The statue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outside Dongtan Cultural Complex Center upon the development of Dongtan New Town in the 2000s.
- 동탄복합문화센터 --> Dongtan Cultural Complex Center (홈페이지), Dongtan Multi-culture Center (건물 앞 표지), Dongtan Multicultural Center (구글) / 지자체 문의 필요
- https://en.wikipedia.org/wiki/Chatra_(umbrella)
2024
이 석불은 1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동탄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작은 산에 위치해 있었으며, 당시 주요 교통로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석불은 행인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자 이정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시 개발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석불은 두꺼운 원반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그 복식은 문인석의 제복을 닮았다. 이 스타일은 왕실과 지배층의 묘 앞에 세워진 문인석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주로 15세기에 제작되었다. 석불의 얼굴은 긴 타원형이며, 이마와 눈썹 사이에 새겨진 구슬 모양의 점은 부처의 자비가 세상에 비추는 것을 상징하는 흰 털을 나타낸 것이다. 석불이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물건은 연꽃 봉오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