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영당
화산영당 Hwasanyeongdang Shr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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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화산영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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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wasanyeongdang Shrine |
한자 | 華山影堂 |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만가리길 14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5월 1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화산영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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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화산영당은 조선 시대의 학자 화산 정규한(華山 鄭奎漢, 1750~1824)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832년(순조 32)에 세운 사당이다. 1970년대 초 영정을 도난당해 현재는 위패만 모시고 있다.
정규한은 1780년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오르지 않고, 고향인 공주에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며 향약을 정비하였다. 그는 화산정사(華山精舍)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자연을 좋아하는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1795년(정조 19)에 임금이 유생들의 글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그의 글이 고시(古詩) 부분의 으뜸으로 뽑혀 왕으로부터 직접 『주서백선(朱書百選)』을 받았다고 한다. 『주서백선』은 정조가 주자의 편지 중에서 100편을 뽑아 모은 책으로 당시 일반인에게는 널리 배포되지 않아 큰 영광으로 여겼다.
정규한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제자와 지역 유생들이 영당을 세웠으며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사당 뒤편에는 정규한의 묘가 있다.
영문
Hwasanyeongdang Shrine
Hwasanyeongdang Shrine was established in 1832 to enshrine a portrait of the prominent Confucian scholar Jeong Gyu-han (1750-1824, pen name: Hwasan). The portrait was stolen from the shrine in the early 1970s, and only his spirit tablet remains inside.
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780 but did not seek the career of a civil official and instead devoted his life to teaching. In his hometown of Gongju, he founded Hwasanjeongsa Study Hall where he taught his students. Jeong was known for his excellent writing skills and his love of nature. In 1795, when King Jeongjo (r. 1776-1800) gathered works written by scholars from around the country for evaluation, he chose a piece written by Jeong as the best in the category of old-style poetry. In recognition of his talent, the king presented Jeong with a copy of One Hundred Selected Works of Zhu Xi (Juseo baekseon), a compilation of the works of the Confucian sage Zhu Xi (1130-1200) selected by King Jeongjo. Due to the great rarity of the book, to receive it as a gift from the king was considered a great honor.
This shrine was established after Jeong’s death by his students and local Confucian scholars. It has since undergone several renovations. Jeong’s tomb is located behind the shrine.
영문 해설 내용
화산영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정규한(1750-1824, 호: 화산)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832년에 세운 사당이다. 1970년대 초 영정을 도난당해 현재는 위패만 모시고 있다.
정규한은 1780년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오르지 않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고향인 공주에서 화산정사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자연을 좋아하는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1795년 정조(재위 1776-1800)가 유생들의 글을 모아 평가하였는데, 정규한이 지은 글이 고시(古詩) 부분의 으뜸으로 꼽혀 왕으로부터 직접 『주서백선』이라는 책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주서백선』은 정조가 주자의 편지 100편을 친히 뽑아 모은 책으로, 당시 일반인에게는 널리 배포되지 않아 사람들이 큰 영광으로 여겼다.
정규한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제자와 지역 유생들이 영당을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사당 뒤편에는 정규한의 묘가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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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영당 | Place | 화산영당 | |
L34-0069-0000 | Heritage | (충청남도_문화재자료_제69호)_화산영당 | |
정규한 | Actor | 정규한(鄭奎漢,_1750~1824) | |
조선_정조 | Actor | 조선_정조(正祖,_재위_1776-1800) | |
주서백선 | Record | 주서백선(朱書百選) | 정조가 주자의 편지 중에서 100편을 친히 뽑아 모은 책. 정규한은 정조에게 이 책을 직접 하사받았다. |
정규한_묘 | Object | 정규한_묘 | |
화산정사 | Place | 화산정사 | 정규한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웠던 강학당. |
송환기 | Actor | 송환기(宋煥箕,_1728-1807)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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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영당 | L34-0069-0000 | isDesignatedAs |
정규한 | 화산영당 | isEnshrinedIn |
정규한 | 조선_정조 | isRelatedTo |
정규한 | 주서백선 | isRelatedTo |
조선_정조 | 주서백선 | contributor |
화산영당 | 정규한 | isNamesakeOf |
화산영당 | 정규한_묘 | isNear |
송환기 | 정규한 | hasDisciple |
정규한 | 화산정사 | founder |
참고자료
- 공주시, 『공주의 문화유산 1: 도지정문화재 및 향토문화유적』, 2012, 226~228쪽.
- ‘화산영당’,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7842&cid=40942&categoryId=37404
- ‘화산영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400690000
- 공주시, 1월의 역사인물 '화산 정규한', 흥미진진 공주 공식블로그. https://blog.naver.com/cyber_gongju/222196862929 -> 공주 지역 향약 정비 / 화산집 - 1830년(순조 30) 정규한의 아들 정수린(鄭秀麟)이 편집·간행 / 성담 송환기(송시열-권상하-한원진-송능상-송환기로 학맥이 이어진다고 함)에게 배움 / 화산영당은 3차례(1871,1931,1961) 중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