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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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원
Hwasanseowon Confucian Academy
화산서원.jpg
대표명칭 화산서원
영문명칭 Hwasanseowon Confucian Academy
한자 花山書院
주소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로 227-40 (방축리)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46호
지정(등록)일 1975년 9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화산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선조 때 재상(宰相)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다. 1631년(인조 9) 포천 유림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창건하고 이후 ‘백사서원’이라 칭하다가 1659년(효종10)에 화산서원(花山書院)으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항복은 우애와 해학이 얽힌 ‘오성과 한음설화’에서 오성대감으로도 유명하며, 임진왜란 때 군사의 업무를 총괄하는 병조판서(정2품)가 되어 전쟁을 지휘하여 국난 극복에 힘썼던 인물이다.

화산서원은 1868년(고종5) 서원 철폐령을 당하여 북청에서 노덕서원(老德書院)을 헐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헐어버린 후 위패를 땅에 묻고 단(壇)을 돋우며 제향을 받들다가 1971년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사우를 복원하고 이항복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였다. 사우(祠宇)에서 외삼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좌측에 동재(東齋 ; 東岡齋) 우측에 서재(西齋 ; 弼雲齋)를 놓고 이는 강당을 겸한 재실(齋室)로 쓰인다.

국문 수정

서원은 조선시대에 각 지역의 유학자들이 세운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화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을 모신 서원이다.

이항복은 1580년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의주까지 호종했으며, 전쟁을 지휘하여 국난 극복에 힘썼다. 이러한 공을 인정 받아 1604년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원래 화산서원은 1631년 가산면 옥금동에 지어졌으며, 이항복의 호를 따서 ‘백사서원’이라고 칭했다. 1635년 지금 위치로 옮겨지었고, 1720년에 뒷산(화봉산)을 가리키는 ‘화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71년 사당을 다시 짓고 이항복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였다.

경내의 건물들은 앞에서부터 외삼문, 동재와 서재, 내삼문, 사당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강당을 겸한 재실로 쓰인다.


  • 사액: 조선시대에 왕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

영문

Hwasanseowon Confucian Academy

Confucian academies, called seowon in Korean, are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ich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Hwasanseowon is dedicated to Yi Hang-bok (1556-1618, pen name: Baeksa),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mid-Joseon period.

Yi Hang-bok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When the Japanese invaded in 1592, he escorted King Seonjo (r. 1567-1608) and the royal family members to refuge near the northern border of the Korean Peninsula, and later greatly contributed to fighting back the Japanese and stabilizing the country in the midst of the crisis. In recognition of his contributions,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Hwasanseowon was first built in 1631 in another village in Gasan-myeon. It was initially named “Baeksaseowon” after Yi’s pen name. In 1635,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and in 1720, it was renamed by the king to "Hwasanseowon" after Hwabongsan Mountain, at the foot of which it is located. In 1868, it was demolished by a nationwide decree. The shrine was rebuilt in 1971.

The complex, from front to back, includes a main gate, two dormitories, an inner gate, and a shrine. The dormitories are also used as ritual houses and lecture ha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