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석택리 유적
| 홍성 석택리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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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홍성 석택리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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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洪城 石宅里 遺蹟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
| 지정(등록)일 | 2021년 10월 12일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지 |
해설문
국문
석택리유적은 내포신도시 동쪽, 금마천 주변에 펼쳐진 충적평야를 끼고 있는 완만한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주거지, 분묘, 환호, 가마, 도로, 고상 가옥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 1,000여 기가 확인되었다. 특히 유적의 핵심을 이루는 환호 등 850여 기의 원삼국 시대 유구는 당시 홍성 지역 마한의 문화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석택리유적의 환호취락은 방어를 위한 환호 시설, 일상생활을 위한 주거지군, 의례와 관련된 광장 공간, 생산을 위한 가마와 작업장 시설, 그리고 생활공간과는 별도로 구분된 분묘 공간까지 모두 갖춘 복합유적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환호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는 백제 시대 주거지 4기가 조사되었는데, 이곳 토광묘에서 출토된 흑색마연토기 중 직구광견호는 서산 기지리유적 출토품보다도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고급 토기는 이 지역과 백제와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즉 4세기 중엽 무렵 홍성 지역 일대에 백제 중앙 정부의 영향이 미쳤음을 의미하며, 권위의 상징인 직구광견호가 부장된 백제 토광묘가 환호취락 주변에 조성된 시점에는 이 지역 집단이 백제에 귀속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환호취락의 주거지와 주구묘 등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석택리 환호취락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 무렵에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석택리유적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발굴 조사가 완료된 유구는 경화 처리하여 보존하였으며,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구역은 향후 추가 발굴을 위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