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효자 임근 묘갈명비
| 효자 임근 묘갈명비 Stele of Im Geun for His Filial Devo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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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효자 임근 묘갈명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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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tele of Im Geun for His Filial Devotion |
|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산144 |
| 지정(등록) 종목 |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
해설문
국문
이 비는 조선 중기의 효자 임근(任謹, 1494~1549)의 묘소에 세운 묘갈명비이다. 묘갈은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고인의 행적과 인적 사항을 기록한다.
임근은 자 경중(敬仲), 호 백헌(栢軒)으로, 중종 때 효행으로 순릉참봉에 임명되었고, 세상을 떠난 뒤 명종의 명으로 제관이 파견되어 치제*되었다. 특히 산 노루가 부엌에 들어오고, 겨울에 죽순이 돋으며, 맹호가 호위하는 등 신이한 효행 일화가 전한다.
비문은 학자 조홍진(趙弘鎭)이 짓고, 임근의 8대손 임방한(任邦翰)이 글씨를 썼으며, 1799년 정조 23년(기미년)에 세워졌다. 앞면에는 ""순릉참봉 백헌 임근지묘 의인 이천 서씨 부좌""라 새겨져 있으며, 비신은 총 26행으로 구성되었다.
이 비석은 사각 좌대와 기와지붕형 비갓을 갖추고 있으며, 장흥임씨 문숙공파 선산 내에 위치해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효자 임근 묘갈명비는 조선 전기 효자 문화와 더불어, 당대 어사 천거, 왕의 치제 등 국가적 예우가 함께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 치제: 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죽은 신하를 제사 지내던 일
영문
Stele of Im Geun for His Filial Devotion
This stele was erected in 1799 in front of the tomb of Im Geun (1494-1549) to commemorate his filial devotion and record details about his life.
Born in Haenam, Im Geun did not pursue a career as a civil official, instead devoting his life to scholarly studies. His outstanding filial devotion is said to have facilitated various miraculous events, such as a wild deer appearing in the kitchen and bamboo shoots appearing in winter, which allowed him to prepare meals for his mother. When word of his filial deeds reached the king, Im was granted an official post. Upon Im’s death, the king also bestowed funerary offerings and an epitaph.
The stele consists of a rectangular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shaped like a tile roof. The body stone bears 26 rows of inscribed text composed by the scholar Jo Hong-jin (1743-1821) and calligraphed by Im’s eighth-generation descendant Im Bang-han. The stele records information of historical academic value, including Im Geun’s filial deeds and the state honors bestowed upon him, such as the king’s tribute.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의 효자 임근(1494-1549)의 행적과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1799년 묘소 앞에 세운 것이다.
임근은 해남 출신으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산 노루가 부엌에 들어오고 겨울철에 죽순이 자라나 어머니 진지상에 올리는 등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임근의 효행이 왕에게까지 알려져 벼슬을 받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왕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 기리기도 하였다.
이 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기와지붕 모양의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에는 총 26행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비문은 학자 조홍진(1743-1821)이 짓고, 임근의 8대손 임방한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임근의 효행과 왕의 치제 등 국가적 예우가 함께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