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화원 정어사철비
| 화원 정어사철비 Iron Stele of Jeong Man-seok in Hwawon-m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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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원 정어사 철비, 디지털해남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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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화원 정어사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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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Iron Stele of Jeong Man-seok in Hwawon-myeon |
|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길 14 (금평리) |
| 지정(등록) 종목 |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
해설문
국문
이 철비는 정조 대 문신이자 청백리로 이름 높은 정만석(1758~1834)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입니다. 본관은 온양이며, 시호는 숙헌으로,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습니다.
1795년(정조 19), 정만석은 호남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전라도 일대의 부정과 폐단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휼한 공로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당시 호남 지역은 100년 만의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 장흥, 해남, 진도 일대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던 상황이었고, 정만석은 구휼에 실패한 군수를 파직시키고, 구휼미 300석을 풀어 백성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에 지역민들이 쇠붙이를 모아 철비를 세웠다고 하며, 비 전면에는 「어사정공만석영세불망비(御史鄭公萬碩永世不忘碑)」라는 명문이, 후면에는 「갑인삼월일(甲寅三月日)」이라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는 1854년(철종 5)으로 추정됩니다.
이 철비는 원래 화원면 신덕리에 세워졌으나, 1999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습니다. 본래 이 지역에는 세기의 철비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공출로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는 이 비만이 남아 있습니다.
영문
Iron Stele of Jeong Man-seok in Hwawon-myeon
This iron stele honoring the civil official Jeong Man-seok (1758-1834)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in 1854. Originally located in Sindeok-ri Village of Hwawon-myeon Township, the stele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99. Although there used to be three iron steles in the Haenam area, two of them were destroyed by Japanese authorities to be used in weapon produc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Jeong Man-seok was sent to the Jeolla-do region in 1795 to serve as a secret inspector. At the time, the region was experiencing its worst harvest in 100 years, which caused famine in the areas of Jangheung, Haenam, and Jindo that led to great starvation and death. It is said that Jeong Man-seok dismissed the local magistrates who failed to provide relief to the residents and distributed the relief provisions himself. To commemorate Jeong’s service to the public, the region’s residents collected iron and erected this stele.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of the stele reads “Stele for the Perpetual Remembrance of His Honor, Secret Inspector Jeong Man-seok.”
영문 해설 내용
이 철비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정만석(1758-1834)을 기리는 것으로, 1854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화원면 신덕리에 세워졌으나, 1999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본래 해남에는 3기의 철비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무기를 만들기 위해 수탈하여 지금은 이 비만이 남아 있다.
정만석은 1795년 전라도 지역의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당시 전라도 지역은 100년 만의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 장흥, 해남, 진도 일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정만석은 구휼에 실패한 군수를 파직시키고, 구휼미를 내주어 백성을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쇠붙이를 모아 철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암행어사 정만석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비석”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