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용연사
합천 용연사 Yongyeonsa Shrine,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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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용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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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Yongyeonsa Shrine, Hapcheon |
한자 | 陜川 龍淵祠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남명로 96-15 (삼가면, 제실)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00호 |
지정(등록)일 | 1993년 12월 2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합천 용연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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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용연사는 영모재 이온(永慕齋 李榲)을 추모하기 위해 1580년에 지은 사당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1910년에 용호정(龍湖亭)을 지어 향사(享祀)를 다시 지내다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에 추모제를 지낸다.
용연사 맞은편에 세워진 강궤평(降櫃坪) 비(碑)는 하늘에서 선생의 효성에 감복하여 쌀이 나오는 금궤를 여기 들판에 내려 준 것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 : 매년 음력 3월의 ‘丁’자가 들어있는 날 중 2번째에 정(丁)자가 들어있는 날짜.
영문
Yongyeonsa Shrine, Hapcheon
This shrine was built in 1580 to honor Yi On (?-1379), who was known for his filial piety.
Although Yi On devotedly took care of his parents, his family was poor and he could not provide enough food. Feeling desperate, he cried to the heavens, and in response to his pleas, a golden chest full of rice descended from the sky. No matter how much rice he took from the chest it always remained full. With the help of the chest, Yi On managed to look after his parents, and when they passed away, the golden chest disappeared.
The shrine was demo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n 1910, a pavilion called Yonghojeong was built on the former site of the shrine to perform memorial rituals. In 1947, the shrine and other auxiliary buildings were built anew. A ritual is held yearly in the third lunar month.
On the field across the road from the shrine is a stele that bears the inscription “The Field Where the Golden Chest Descended.”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효자로 이름난 이온(?-1379)을 추모하기 위해 1580년에 처음 세운 사당이다.
이온은 정성으로 부모를 섬겼지만, 집이 가난해 양식이 없었다. 그가 슬퍼하며 하늘에 호소하니, 흰 쌀이 가득한 금궤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쌀은 계속 퍼내어도 줄지 않았다. 덕분에 이온은 부모를 봉양할 수 있었고,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후 금궤도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사당은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지만, 사당이 있던 자리에 1910년부터 용호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제사를 다시 지냈고, 1947년 사당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현재도 매년 음력 3월에 제사를 올린다.
용연사 맞은편 들판에는 ‘금궤가 내려온 들판’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참고자료
- ‘합천 외토리 쌍비’ 항목 중 조사자 의견 -> 이온(李榲)의 효성은 삼가 현감 정우용(鄭友容)이 지은 정려기(旌閭記)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그는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데 노력하였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양식을 잇기 어렵자 하늘을 우러러 슬피 호소하니,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고 천둥벼락이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그때 앞 들판에 금궤 하나가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수령에게 보고하게 된다. 금궤에는 ‘이온양친지수(李榲養親之需)’라고 적혀 있었고, 금궤 안에는 흰쌀이 가득하였다. 쌀은 계속 퍼내어도 줄지 않았고, 3년 동안 부모의 봉양을 할 수 있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금궤가 내려올 때와 같이 뇌성벽력이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더니 금궤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 들판을 ‘금궤가 내려온 들판’이라고 하여 ‘강궤평’(降櫃坪)' 이라 하였다. 1385년에는 강궤평비를 처음 세웠고, 1950년 강궤평비를 다시 세웠다. 1985년 유적보존위원회에서 자연석으로 다시 강궤평비를 세워 효 실천의 현장으로 전하고 있다.
- 합천 삼가면 외토리 용호정 (한국의 혼 樓亭), 송풍수월,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hyh45&logNo=2011116121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토동(兎洞)은 인천이씨들의 세거지이다. 그리고 남명(南冥) 조식 선생이 태어나신 외가가 있는 곳이다. '강궤평(降櫃坪)', 일명 '번개들(電坪)'을 걸어 들어가면 들판 가운데 용호정(龍湖亭)이 있다. 용호정은 고려 말 중현대부(中顯大夫) 전의감정(典醫監正)을 지낸 영모재(永慕齋) 이온(李 :?~1379)이 거주한 유지(遺趾)에 후손들과 유림에서 그를 추모하여 세운 정자이다. 본래는 1580년에 용연사(龍淵祠)를 세워 영모재를 향사하였다. 그러다가 1688년에 용연서원(龍淵書院)을 건립하여 추모하였다. 그러나 대원군 때 훼철되었고, 본래 용연사의 유허지를 알리는 면암(勉菴) 최익현이 지은 유허비가 남아 있다. 그 후 1910년에 후손과 유림이 다시 뜻을 모아 용호정을 건립했다. 이어 용연사와 비각, 동재, 서재가 차례로 복원되어 1947년 용연서원으로 정비되었다.
- 역사와 야생화,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win690/15936814 -> ‘송풍수월’ 네이버 블로그와 내용 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