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양세삼강김씨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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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양세삼강김씨유허비
Commemorative Stele of the Kim Family, Hapcheon
대표명칭 합천 양세삼강김씨유허비
영문명칭 Commemorative Stele of the Kim Family, Hapcheon
한자 陜川 兩世三綱金氏遺墟碑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24년 8월 22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합천 양세삼강김씨유허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유허비는 과거에 살았던 인물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양세’는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를 의미하고, ‘삼강’은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도리로 충(忠), 효(孝), 열(烈)을 뜻한다.

합천 양세삼강김씨유허비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김난손(金蘭孫)의 충행과 그의 아들 김시경(金時卿)의 효행, 며느리 초계 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순조 19년(1819)에 세웠다.

김난손은 조선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의병 400여 명을 이끌고 삼가현 봉성산 전투에 참전하였고 선봉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김시경은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후, 아버지의 묘 곁에서 시묘*를 살며 효도를 다하다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시경의 아내 초계 정씨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9일 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양세삼강김씨유허비는 지붕돌, 몸돌,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는 190㎝이다. 비문은 삼가현감을 지냈던 이병원이 짓고 글씨는 이지수가 썼으며, 비문 제목의 글씨는 이인수가 썼다.


  • 시묘: 부모의 상중에 3년간 그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것.

영문

Commemorative Stele of the Kim Family, Hapcheon

This stele was erected in 1819 to commemorate the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and matrimonial devotion of Kim Nan-son, his son Kim Si-gyeong, and his daughter-in-law Lady Jeong, respectively.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ndividuals who exemplified these Confucian virtues were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with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It was a distinguished honor for a single family to be recognized for all three virtues.

Kim Nan-son led a civilian army of about 400 me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heroically died in 1593 in the Battle of Bongseongsan Mountain. After his death, his son Kim Si-gyeong built a hut next to his tomb and mourned him with utmost filial devotion until his own death five months later. Lady Jeong, grieving the death of her husband, refused to eat or drink and died nine days later.

Th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a body stone, and a roof stone, measuring 190 cm in total height. The text inscribed on the stele was composed by local magistrate Yi Byeong-won and calligraphed by Yi Ji-su, while the stele’s name was calligraphed by Yi In-su.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김난손의 충의, 아들 김시경의 효행, 며느리 초계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819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유교적 덕목을 실천한 이들에게 나라에서 정려 현판이나 정려비를 내려 그 공덕을 기렸다. 한 가문이 세 덕목 모두에 대해 정려를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영예였다.

김난손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의병 400여 명을 이끌고 봉성산 전투에 참전하였고 선봉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김시경은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후, 아버지의 묘 곁에 움막을 짓고 지내며 효도를 다하다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시경의 아내 초계정씨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비석은 지붕돌, 몸돌,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는 190cm이다. 비문은 삼가현감을 지냈던 이병원이 짓고 글씨는 이지수가 썼으며, 비문 제목의 글씨는 이인수가 썼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