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관수정
합천 관수정 Gwansujeong Pavilion,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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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관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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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wansujeong Pavilion, Hapcheon |
한자 | 陜川 觀水亭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성산큰길 63-15 (쌍책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1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5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합천 관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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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이윤서(李胤緖, 1574~1624)의 후손인 이봉서(李鳳瑞)가 18세기 말엽에 세운 정자이다. 황강변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며, 정자 바로 위에는 조선 중기의 학자 황강 이희안(黃江 李希顔)을 추모․제향하기 위해 세운 황강정(黃江亭)이 있다.
관수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앞에 마루를 두고 뒤에 방을 배치하였다. 관수정이 자리 잡은 이곳 성산리 내촌(內村) 마을은 합천 이씨 전서공파의 집성촌으로서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이윤검(李允儉, 1451~1520)의 후손들이 500여 년간 대를 이어 살고 있다.
- 기묘명현(己卯名賢): 1519년(중종 14)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신하들
영문
Gwansujeong Pavilion, Hapcheon
Gwansujeong Pavilion was built in the late 18th century by Yi Bong-seo (1697-1773), a member of the Hapcheon Yi Clan. Standing on a steep cliff beside the Hwanggang River, the pavilion commands a picturesque view of the river and the surrounding area. The building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front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back.
Naechon Village in Seongsan-ri, where this pavilion is located, is a clan village of the Hapcheon Yi Clan. The descendants of the military official Yi Yun-geom (1451-1520) have lived in this village for generations. Behind Gwansujeong Pavilion is another pavilion named Hwanggangjeong, which was built to commemorate Yi Hui-an (1504-1559), a renowned scholar and an ancestor of Yi Bong-seo.
영문 해설 내용
관수정은 합천 이씨 가문의 이봉서(1697-1773)가 18세기 말에 세운 정자이다. 황강변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앞에 마루를 두고 뒤에 방을 배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정자가 위치한 성산리 내촌마을은 합천이씨 집성촌으로, 무신 이윤검(1451-1520)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관수정 뒤에는 저명한 학자이자 이봉서의 선조인 이희안(1504-1559)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황강정이 있다.
참고자료
- 합천 관수정,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802210000
- 친구 따라 난 황강정으로 간다,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2017.12.6. https://www.gyeongnam.go.kr/news/board/view.gyeong?menuCd=DOM_000001603001000000&boardId=BBS_0000049&dataSid=5637961 -> 원경 사진(강이 내려다보여 위치 가늠할 수 있음)
- 이윤검은 1504년 기묘사화 당시 이극균과의 친분을 이유로 곤장형을 받은 적이 있고(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10년 5월 10일 기해 5번쨰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005010_005), 1520년 영해부사로 임명되었다가 사화에 연루되어 삭탈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5년 5월 18일 을사 2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505018_002) 이윤검의 둘째 아들 이희민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삭탈관직 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이희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6719) 황강정에 배향된 이희안은 이윤검의 막내 아들로 남명 조식과 교유했던 학자이다.
- 이윤서는 이윤검의 맏아들 이희증의 손자로(족보상으로는 증손자 : 이희증-이팽년-이천수-이윤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와 함께 의병으로 활약했고,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탈출했다가 자결하였다.
- 합천 이씨 인터넷 족보 (http://www.yesjokbo.biz/jokboroot/new_default.asp) -> 이희증-이천수-이윤서(1574-1624)-이형원-이우신-이창희(1669-1749)-이봉서(1697(정축)-1773(계사,77세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