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교수정
함양 교수정 Gyosujeong Pavilion, Ham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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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함양 교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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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yosujeong Pavilion, Hamyang |
한자 | 咸陽 敎授亭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7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함양 교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교수정은 고려 말기 문신인 덕곡 조승숙(德谷 趙承肅)이 태조 7년(1398)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현재의 건물은 1872년경에 고쳐 지은 것이다.
조승숙은 고려 우왕 7년(138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나라 사신으로 간 중국에도 이름을 널리 알렸으나 조선 태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두문동 72현(賢)의 한 명으로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도의로 친교를 맺고 성리학을 강론하였다. 성종(1469~1494)은 조승숙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제문(賜祭文)을 내렸는데, ‘수양명월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 이라는 여덟 자를 자연 암반에 새기고 거북머리를 조각하여 비를 세웠다. 비의 높이는 320cm, 폭 90cm, 두께 39cm이다.
교수정은 지곡천의 왼쪽에 있는 작은 독립 구릉의 정상부에서 남동쪽을 향해 있다. 온돌방 앞에는 고사리와 국화라는 뜻의 ‘미국(薇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조승숙의 충직함과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상부 가구는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과 기둥을 건너서 위에 얹은 나무)가 다섯 개이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지붕 위에 까치 박공(‘ㅅ’자 모양의 널빤지)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 형식이다.
- 수양명월 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 수양은 백이, 숙제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숨어든 산이고, 율리는 도연명이 은거했던 마을 이름이다. 성종이 조승숙을 수양산의 밝은 달(수양명월)과 율리의 맑은 바람(율리청풍)에 비유한 것이다.
영문
Gyosujeong Pavilion, Hamyang
This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in 1398 by the civil official Jo Seung-suk (1357-1417).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872.
Jo Seung-suk was born in Hamyang and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77. When the Goryeo dynasty (918-1392) fell and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as founded, he left his official post and lived in retirement in his hometown, where he built this pavilion and spent his latter years teaching his students.
The pavilion consists of a wide wooden veranda in the front and on the right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rear left. There are several wooden plaques hanging inside the pavilion. The one hanging above doors to the room means “fern and chrysanthemum (薇菊)” and is a reference to loyalty and devotion, which these plants symbolize.
In front of the side gate is a stele erected in the late 19th century by Jo’s descendants. The stele is carved with eight Chinese characters, meaning “the bright moon of Shouyang Mountain and the clear wind of Chestnut Village (首陽明月栗里淸風),” which is a line from an epitaph posthumously bestowed to Jo by King Seongjong (r. 1469-1494). Shouyang Mountain (in today’s Shanxi, China) is where Boyi and Shuqi from the classic Chinese story hid after the Shang dynasty (16th C. BCE-1046 CE) was conquered by the Zhou dynasty (1046 BCE-256 CE) and they refused to serve two kings. Chestnut Village refers to the name of the home village of the Chinese poet Tao Yuanming (365-427), where he lived in retirement after leaving his post.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조승숙(1357-1417)이 1398년에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872년경에 고쳐 지은 것이다.
조승숙은 함양 출신으로 1377년 문과에 급제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은거하였으며, 교수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냈다.
정자는 앞쪽과 오른쪽의 넓은 마루와 왼쪽 뒤편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내부에는 여러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그중 온돌방 앞에 걸린 현판의 ‘미국(薇菊)’은 “고사리와 국화”라는 뜻이며 이 식물들은 충직함과 절개를 상징한다.
정자 뒤쪽의 협문 앞에는 19세기 후반 후손들이 세운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수양산의 밝은 달과 율리의 맑은 바람”이라는 뜻의 8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 성종(재위 1469-1494)의 명으로 지어진 제문에 있는 구절이다. 수양산은 중국 상나라의 인물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벌한 후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숨어든 산이다. 율리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했던 고향마을 이름이다.
참고자료
- 윤호진, 「덕곡(德谷) 조승숙(趙承肅)의 생애와 후대의 평가」, 『연민학지』23, 2015. https://web.yonsei.ac.kr/yonmin/article/23/23-04.pdf -> 생애 전반
- 조승숙, 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KM_5COc_1377_001239&curSetPos=5&curSPos=0&category=dirSer&isEQ=true&kristalSearchArea=B -> 생몰 및 문과 급제
- 윤호진, 위의 글 88쪽. -> 성종의 명에 의한 제문 작성
- 두문동칠십이인,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91%90%EB%AC%B8%EB%8F%99%EC%B9%A0%EC%8B%AD%EC%9D%B4%EC%9D%B8
- 함양 교수정, 디지털함양문화대전 및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hamyang.grandculture.net/hamyang/toc/GC07200510#p3 -> 함양정 건립연도(1398년)
- 교수정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kor/ksmUsrView.do?menuIdx=584&ksm_idx=8720 -> 함양정 중건연도(187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