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악양루
함안 악양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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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함안 악양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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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 岳陽樓 |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1345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10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함안 악양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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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악양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1857 년에 세운 것이라 한다. 악양루는 아래로 남강이 흐르고 , 앞으로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에 복원하였고, 1963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옆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올렸다. 이 곳의 풍광이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에 비길 만하다 하여 악양루라 지었다고 전 한다. 옛날에는 의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전하여 지나, 악양루(岳陽樓)라 쓰인 지금의 현판은 청남 오제봉(吳濟學)의 글씨이다.
수정 국문
초고
악양루는 악양마을 북쪽 절벽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1857년에 건립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63년에 새로 지었다.
함안천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남강과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이곳의 풍광이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에 비길 만하다 하여 악양루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강쪽에 걸린 큰 현판에는 정자의 이름이 쓰여있는데, 글씨는 현대 서예계의 거목인 오제봉(吳濟峰, 1908~1991)이 썼다. 정자의 북서쪽에는 정자의 별명인 ‘기두헌(倚斗軒)’이 쓰인 작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북두칠성에 의지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원래 악양루라는 명칭은 중국 호남성과 호북성의 경계에 있는 동정호에 있는 누각에서 유래되었다. 3세기 초반 삼국시대 동오(東吳)의 장군 노숙(魯肅)이 수군(水軍)을 조련시키기 위해서 건설한 열군루(閱軍樓) 즉 지휘소였다. 악양루는 북송 때 범중엄(范仲淹)[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를 비롯해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712~770]나 이백(李白)[701~762]의 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악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이러한 구조는 대개 5량가로 구성하는데 악양루는 단출한 3량가로 구성하였다. 바닥 전체가 마루이고 사방을 틔워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 5량가: 건물 정면에서 배면까지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를 모두 5개 놓은 짜임
- 악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이러한 구조는 대개 5량가로 구성하는데 악양루는 단출한 3량가로 구성하였다. 바닥 전체가 마루이고 사방을 틔워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악양루는 악양마을 북쪽 절벽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1857년에 건립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63년에 새로 지었다.
2차 수정
악양루는 악양마을 북쪽 절벽 위에 있는 정자이다. 1857년에 건립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63년에 다시 지었다.
함안천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남강과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풍광이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에 비길 만하다고 하여 이름을 악양루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강쪽에 걸린 큰 현판의 악양루 글씨는 현대 서예계의 대가인 오제봉(吳濟峰, 1908~1991)이 썼다. 바닥 전체가 마루이고 사방을 틔워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하였다.
참고자료
- “함안 악양루”,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1900000,38&pageNo=1_1_1_0
- “악양루”, 디지털함안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am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haman&dataType=99&contents_id=GC06200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