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정구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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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 신도비
Stele of Jeong Gu
대표명칭 한강 정구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Jeong Gu
한자 寒岡 鄭逑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동강한강로 9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지정(등록)일 2009년 7월 6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인조 11년(1633)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한강 정구 신도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신도비는 왕이나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크게 거북 모양과 용모양을 조각하여 장식된다.

이 비석은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 신도비로 전체 형태가 잘 남아있고 그의 삶과 업적 등이 새겨져 있다. 비신 제일 위에는『문목공한강정선생신도비명(文穆公寒岡鄭逑先生神道碑銘)』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수북 김광현(水北 金光炫, 1584~1647)이 썼다. ‘문목’은 한강 정구가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비석의 글 내용은 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1628)이 지었고, 글씨는 동명 김세렴(東溟 金世濂, 1593~1646)이 쓴 것을 새겼다.

원래 1633년(인조 11) 성주 수륜면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에 있던 한강 정구의 묘소에 있었는데 묘소를 성주읍 금산리 인현산으로 옮기면서 1668년(현종 9) 이곳 회연서원 옆으로 옮겨졌다.

한강 정구는 조선시대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던 성리학의 대학자로서 조선 후기의 실용학문의 기원이 된다.

이 신도비는 만들어진 연대가 오래되었고 그 형태가 잘 남아있어 국가유산적 가치가 높고 대학자였던 한강 정구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영문

Stele of Jeong Gu

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the scholar Jeong Gu (1543-1620).

Born in Seongju, Jeong Gu was praised for his talents from childhood and amassed profound knowledge not only in Neo-Confucianism but also in medicine, history, and astronomy. He dedicated his entire life to scholarship and teaching, served in several official posts, and was posthumously promoted to chief state councilor, the highest government position.

The stele was originally erected in 1633 near Jeong’s tomb on the mountain behind Ganmal Village in Suseong-ri, Seongju.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next to Hoeyeonseowon Confucian Academy in 1668 when the tomb was relocated to Inhyeonsan Mountain in Geumsan-ri, Seongju.

The stele consists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a body stone bearing an inscription, and a capstone decorated with a pair of carved dragons. The title inscribed at the top of the body stone was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 Kim Gwang-hyeon (1584-1647). The main inscription was composed and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s Sin Heum (1566-1628) and Kim Se-ryeom (1593-1646), respectively.

영문 해설 내용

이 신도비는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1543-1620)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정구는 성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고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약, 역사, 천문 등 다양한 분야에 박학하였다. 평생 학문에 전념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사후 최고위 관직인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 신도비는 원래 1633년 성주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에 있던 정구의 묘소에 세워졌다. 묘소를 성주 금산리 인현산으로 옮기면서, 신도비는 1668년 이곳 회연서원 옆으로 옮겨졌다.

신도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비문을 새긴 몸돌, 두 마리의 용이 새겨진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신 제일 위에 쓰인 제목은 문신 김광현(1584-1647)이 썼다. 비문은 문신 신흠(1566-1628)이 지었고, 김세렴(1593-1646)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