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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정희등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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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등 묘표
대표명칭 정희등 묘표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산86
지정(등록) 종목 포천시 향토유산



해설문

국문

조선 중기 문신 정희등(鄭希登, 1506~1545)의 자는 원룡(元龍)이며, 지금의 신북면 기지리에서 출생하였다. 1534년(중종 2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45년(인종 1)에 윤원형 등 소윤(小尹)이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키자 이에 반대하다가 소윤에 의해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다 이후 평안도 용천(龍川)으로 유배 가던 중 사망하였다. 1568년(선조 1) 신원(伸冤; 원한을 풀어 버림)되었으며, 이후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등에 의해 그의 복관(復官)이 제기되어 1744년(영조 20)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1786년(정조 10)에는 그의 9세손 정순(鄭淳)이 절혜(節惠; 시호 내리는 은혜)를 베풀 것을 정조에게 상언(上言)하였는데, 이때 ‘의민(毅敏)’이라는 시호를 허락받은 사실을 묘표 측면의 추기(追記)를 통해 알 수 있다. 이후 1803년(순조 3) 3월 정식으로 시호를 받게 되었다.

정희등 묘표는 1744년 추증되면서 후손들이 표석을 세운 것으로 표문은 외6대손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이 짓고, 글씨는 외7대손 이광사(李匡師)가 쓴 것이다. 비문에서 비석의 종류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봉분 앞에 배치되어 있고, 명칭의 부재 등으로 보아 묘표로 판단 된다.

묘표의 전면대자(前面大字)는 이광사 특유의 필체가 잘 나타나 있는데,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해서체(楷書體)를 따른 것으로 서체에 예서(隸書)의 기미가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당시에는 매우 드문 서체이다. 표문(表文)의 글씨는 이광사의 전형적인 소자(小字) 해서(楷書)로 그가 1755년 귀양 가기 전 중년 시절에 쓴 《원교법첩(員嶠法帖)》에 실린 <해서·행서 당시(唐詩)》를 보면 그 특징이 확인된다.

정희등은 포천 출신 조선시대 문인이자 을사명현(乙巳名賢)으로 추증된 인물로서 그의 묘표는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 서체를 확인할 수 있는 희소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포천시 향토유산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