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Octagonal Nine-story Ston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Pyeongchang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영문명칭 Octagonal Nine-story Ston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Pyeongchang
한자 平昌 月精寺 八角 九層石塔
주소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월정사 (동산리)
지정(등록) 종목 국보 제48-1호
지정(등록)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국보 제48호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고려초기 석탑을 대표하는 다각다층석탑으로 석탑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개의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된, 즉 9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더욱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월정사의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에 서 있는 이 구층 석탑은 고려 초기인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바닥돌, 2층으로 된 기단, 몸돌과 지붕돌, 돌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을 제외한 모든 부재가 팔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고, 위층 기단의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표현하였다.

몸돌 1층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불상 등을 모시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작게 조성했으며, 이 중 가장 큰 남쪽의 것에는 문틀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겼다.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여덟 곳의 모서리에 청동으로 만든 풍경을 달았다. 머리장식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 탑은 사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 석탑이 유행했던 흐름을 따라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1970년 기울어졌던 탑을 해체한 후 복원하면서 총 9종 12점의 유물을 발견했으며, 2010년 보존처리 작업이 이루어졌다.

  • 1층 탑신석과 5층 지붕돌 위쪽 두 곳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은제도금여래입상은 5층 지붕돌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것이다.
  • 월정사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 당시 사격 연습의 표적으로 사용되는 등 인위적인 훼손으로 인해 곳곳에 피해 흔적이 남아 있었다.
  • 2001년부터 2002년에 기단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지하 1m 아래에서 기단부로 추정되는 또 다른 유규가 발견된 바 있어 3중 기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기단부의 연꽃 장식은 부도나 불상의 대좌의 장식요소가 반영된 것이다.
  • 석탑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마주 앉아 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탑을 향해 무엇인가 공양을 올리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 점에서,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한 세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되며, 이에 보살상도 국보 제48-2호로 지정되었다.
  • 상륜부의 노반, 복발, 앙화, 보륜까지가 석재이고, 보개, 수연, 용차, 보주는 금동제이다. 찰주는 8층 옥개석까지 관통되어 있다. 여러 차례 수리를 걸친 것으로 추정되는 보개 외의 다른 장식들은 모두 처음 석탑을 세울 때의 부재인 것으로 보인다.
  • 지붕돌의 받침은 다른 석탑과 달리 각형-원형-각형 순으로 되어 있다.
  • 기단부와 상층부를 구성하는 석재는 각각 남부와 북부 지방에서 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석탑 안에 지역이 다른 부재가 확인되는 것에 대해서는 후대에 보수했거나, 둘 이상의 석공이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각자 자신이 있었던 지방의 돌을 이용해 부재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 이 석탑의 조성에 고구려의 다각탑의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후 한강을 따라 하류에 이어져 조선 전기의 다각탑에 그 특징이 계승되었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월정사 대적광전 앞에 서 있는 이 구층석탑은 고려시대인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인 사각형 탑에서 벗어나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유행하였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을 따라 제작된 것으로 고려시대 다각 다층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월정사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화재로 인해 손상된 부재들이 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사격 연습 표적으로 사용되는 등 인위적으로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1970년 전면 해체 수리하면서 일부 지붕돌을 다시 만들었고, 탑 안에서 여래입상, 사리함, 청동거울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바닥돌, 2층으로 된 기단, 몸돌과 지붕돌, 돌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을 제외한 모든 부재가 팔각형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고, 위층 기단의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표현하였다. 몸돌 1층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불상 등을 모시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작게 조성했으며, 이 중 가장 큰 남쪽의 것에는 문틀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모서리마다 청동으로 만든 풍경을 달았다.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아 균형미가 있고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고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며, 청동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장식들을 통해 당시 금속공예 수법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한국전쟁 당시에는 사격 연습 표적으로 사용되는 등 인위적으로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 근거 제시 필요. 명확한 사실이 아닐 경우 삭제 필요,
    • 머리장식 -> ‘상륜부’로 복구 검토 필요, ‘상륜’이라는 표현은 초기불교용어로 전법륜(轉法輪)을 상징하는 고유명사임. 머리장식이라는 표현은 석탑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ㅍ예품에도 사용되고 있어 명칭의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음.
    • 몸돌 1층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불상 등을 모시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작게 조성했으며, -> 마련하였으며, (조성은 주로 무언가 형상있는 조형을 만들 때 사용함)
    •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아래쪽의 보륜은 돌을 깍아 만들었고, 위쪽 찰주와 보주, 보개 등의 장식은 금동으로 제작하여
    • ※ 석탑 앞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국보 48-2)이 탑과 같이 조성된 보살상 임을 명시하고 중요한 의미임을 설명해야함.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축조물이며, 불상과 함께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물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월정사 대적광전 앞이 구층석탑은 일반적인 사각형 탑에서 벗어나 다각다층 석탑으로 만들어진 대표적 작품으로 고려 시대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 당시는 사격 연습의 표적으로 사용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1970년 전면 해체 수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5층 지붕돌 윗면에 네모진 구멍 안에서 여래입상, 1층 몸돌 중앙의 사리공에서 청동 거울, 향나무 편, 청동합이 발견되었다. 이 청동합 안에는 또 다른 은제합이 들어 있었는데 합 속에 “진신사리경(眞身舍利經)” 1축과 수정사리병이 확인되었다.
      이 탑은 바닥돌 위에 2층의 기단, 몸돌과 지붕돌, 돌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머리장식을 제외한 모든 부재가 팔각형으로 되어 있다. 이층기단의 아랫단은 각 면에 안상(眼象)이 조각되었고, 위층은 각 면 모서리에 버팀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각 면 모서리에 비팀기둥이 정연하게 조각되어 있고 8면 중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으며, 남쪽만 다른 것에 비해 규격이 크고 문틀을 달았던 흔적도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는 버팀기둥이 조각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둔 동일한 형태이며, 모서리마다 청동으로 만든 풍경을 달았다. 머리장식은 전체의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있는데 순서대로 맨 아래 사각형의 노반(露盤)그리고 복발(覆鉢), 앙화(仰花),보륜(寶輪)까지는 석재이고 보개(寶蓋), 수연(水煙), 보주(寶柱)는 금동제이다.
      전체적인 비례가 알맞고 균형미가 있으며, 조각 수법도 뛰어나다. 고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며, 청동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장식들을 통해 당시 금속공예 수법도 엿볼 수 있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사리 즉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월정사 대적광전 앞에 서 있는 이 구층석탑은 고려 전기인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북지역에는 일반적인 사각형 탑에서 벗어나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유행하였는데, 이 탑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월정사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화재로 인해 손상된 부재들이 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사격 연습 표적으로 사용되는 등 인위적으로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1970년 전면 해체 수리하면서 일부 지붕돌을 다시 만들다가, 탑 안에서 여래입상, 사리함, 청동거울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바닥돌, 2층으로 된 기단, 몸돌과 지붕돌 위로 돌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이 얹어져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고, 위층 기단의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표현하였다. 몸돌 1층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불상 등을 모시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작게 조성했으며, 이 중 가장 큰 남쪽의 것에는 문틀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모서리마다 청동으로 만든 풍경을 달았다.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아 균형미가 있고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고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며, 청동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장식들을 통해 당시 금속공예 수법 또한 살펴볼 수 있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월정사 대적광전 앞에 서 있는 이 구층석탑은 고려 전기인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인 사각형 탑에서 벗어나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유행하였는데, 이 탑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월정사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화재로 인해 손상된 부재들이 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사격 연습 표적으로 사용되는 등 인위적으로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1970년 전면 해체 수리하면서 일부 지붕돌을 다시 만들었고, 탑 안에서 여래입상, 청동거울, 향나무 조각, 청동합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탑은 바닥돌, 2층의 기단, 몸돌과 지붕돌, 돌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을 제외한 모든 부재가 팔각형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고, 위층 기단의 각 면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표현하였다. 몸돌 1층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불상 등을 모시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작게 마련하였으며, 이 중 가장 큰 남쪽의 것에는 문틀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모서리마다 청동으로 만든 풍경을 달았다.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아 균형미가 있고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고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며, 청동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장식들을 통해 당시 금속공예 수법 또한 살펴볼 수 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문화재대관 국보편-석조물』, 2001, 220~223쪽.
  •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정밀실측보고서』, 2011, 문화재청.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정밀안전진단』, 평창군‧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 2017.
  •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13200480000&pageNo=1_1_1_1 →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안에 있는 탑으로,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참고> 국보 제48-2호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13200480200 2017.01.02. 지정 → 월정사 석조보살상은 팔각구층석탑의 남쪽 전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탑을 향해 무엇인가 공양을 올리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 점에서,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한 세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 보살상은 고려 후기민지(閔漬, 1248∼1326)가 찬한『오대산사적(五臺山事蹟)』의 「신효거사친견오류성중사적(信孝居士親見五類聖衆事跡)」에 “탑 앞에 약왕보살의 석상이 손에 향로를 들고 무릎을 괴고 앉아 있는데, 전해오기를 이 석상은 절 남쪽의 금강연에서 솟아나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 꼭 일치한다. 이에 따라 이 보살상은 대체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권6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근거하여 조성된 ‘약왕보살’로 일컫는다. 석조보살상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며, 안정되고 균형 잡힌 자세와 알맞은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보관과 귀걸이, 팔찌, 가슴 영락 장식 등 세부표현도 화려하고 섬세하다. 이와 같은 탑전(塔前) 공양보살상은 이전에는 찾기 힘든 고려 전기적 특징인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도상과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또한 강원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고려 불교조각의 지역성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보살상과 세트로 조성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국보 제48호로 지정되어 있고, 석조보살상은 보물 제139호로 별도로 지정되어 별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이미 국보로 지정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묶어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 조성 당시의 조형적, 신앙적 의미를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참고> 보물 제1375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 (月精寺 八角九層石塔 舍利莊嚴具)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1123213750000 2003.06.26. 지정 → 월정사 성보박물관 (동산리) 소장 /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내 발견 유물일괄은 1970년 기울어졌던 팔각구층석탑을 해체 복원할 때 발견된 것으로 모두 9종 12점이다. 이들 일괄유물은 대체로 10∼11세기 경에 제작된 유물들이어서 석탑이 건립될 때 함께 납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괄 유물로는 은제도금여래입상과 청동사리외합을 비롯하여 은제내합, 호리병 모양의 수정사리병, 금동제 사각향갑, 청동거울, 전신사리경 두루마리, 수라향갑 주머니, 명주보자기 등이 발견되었다. 월정사팔각구층석탑내 발견 유물일괄은 고려시대 초기의 금속공예사의 현황과 불교사상의 변화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