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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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서윤공파고택
Historic House of the Seoyungong Branch of the Papyeong Yun Clan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파평윤씨서윤공파고택
영문명칭 Historic House of the Seoyungong Branch of the Papyeong Yun Clan
한자 坡平尹氏庶尹公派古宅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고릿골길 86-11 (괴곡동)
지정(등록) 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
지정(등록)일 1992년 10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파평 윤씨 서윤공파 고택은 조선 인조 때 한성부 서윤을 지낸 윤흡(尹熻)의 손자 윤섬(尹暹)이 17세기 말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사당(永思堂)’이란 당호(堂號)가 걸린 고택의 본채는 ‘ㄷ’ 자 평면이고, 그 앞에 행랑채가 ‘ㄱ’ 자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행랑채와 본채가 이어져 있어 ‘ㅁ’ 자 모양의 넓은 안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본채와 행랑채가 이어지는 곳에는 솟을대문을 두었다. 본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사랑방과 안방이 마주하며, 안방은 부엌과 이어져 있다. 사랑방 동측으로 대문과 연이어지는 곳에 함실 겸 창고로 쓰이는 공간이 있다. 행랑채는 옆면 1칸에 전부 7칸 규모로, 고택 남쪽의 담을 대신하고 있다.

이 고택은 후대에 약간의 변형이 있었으나, 대부분에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주택의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안마당을 넓게 만든 것은 영남과 같은 산간 지역 반가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방만의 특징이다. 또한 대문간을 정면에 두지 않고 측면에 조성한 것은 마을 입구에서 곧바로 주택의 내부가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 한성부 서윤: 현재의 서울시 부시장.
  • 솟을대문: 권위의 상징으로 가마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좌우 행랑보다 높게 설치한 대문
  • 함실: 부넘기가 없이 불길이 그냥 곧게 고래로 들어가게 된 아궁이 구조.

영문

Historic House of the Seoyungong Branch of the Papyeong Yun Clan

This is where Yun Heup (1580-1633), the founder of the Seoyungong Branch of the Papyeong Yun Clan, first settled. The house was completed by his grandson Yun Seom in 1675.

Yun Heup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10, but due to political strife, he was dismissed from his post and reinstated several times.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27, he escorted King Injo (r. 1623-1649) to refuge on Ganghwado Island, and when the fortress fell, he was killed by the enemy.

It is said that this house originally consisted of five buildings including a men’s quarters and a shrine, but due to frequent renovations by the descendants, its size was diminished and now only the main quarters and servants’ quarters remain. The main quarters ha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with a main underfloor-heated room and a kitchen on the left, and an auxiliary underfloor-heated room and a storeroom on the right.

Behind the house is the tomb of Yun Heup, in front of which is a stele erected in 1990 that commemorates his life and achievements.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파평윤씨 서윤공파의 시조 윤흡(1580-1633)이 처음 터를 잡은 곳에 손자 윤섬이 1675년에 완공하였다.

윤흡은 1610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정쟁으로 인해 파직과 복직을 거듭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하는 인조(재위 1623-1649)를 호종하였고 성이 함락된 후 적에게 죽임을 당했다.

본래 사랑채, 사당 등의 건물 5동이 있었다고 하나, 후대에 잦은 개보수가 이루어지면서 규모가 축소되어 지금은 본채와 행랑채만 남아 있다. 본채는 중앙에 대청을 두고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이어져 있으며, 오른쪽에는 사랑방과 창고로 쓰이는 공간이 있다.

집 앞에는 윤흡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집 뒤쪽에는 윤흡의 묘가 있다.

참고자료

  • 효경당계축문에 의한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의 원형 고찰, 안준호,이희준,이달훈, 한국주거학회논문집 18(2), 2007. -> 집 최초 건립년대 비정 및 당시 현황 확인 가능.
  • 대전광역시 서구 https://www.seogu.go.kr/kor/content.do?mnucd=SGMENU0500047
  • 고택 남쪽에 윤섬이 조성한 사각형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1970년대에 이 집에 거주하는 후손이 밭으로 사용하기 위해 메웠다고 함.
  • 파평 윤씨 가문은 윤돈-윤창세의 가계를 이어 윤황, 윤전 등 5형제가 노성 5방파를 이루었다. 노종 5방파 인물들은 16-17세기 척화운동을 주도한 척화가문으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윤흡은 넷째 아들이다. (http://nonsan.grandculture.net/Contents/Contents?dataType=01&contents_id=GC02002364&isTreeSpr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