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현포보 수로 및 중건불망비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1736년에 김원보가 가뭄과 홍수로 고통을 받던 동계면 현포리 주민들을 위해서 만든 약 2.6km의 수로이다. 김원보와 마을 주민들이 협동하여 쌓은 이 수로로 인하여 주변에 드넓은 육로가 생겨나고, 마을주민들의 생활도 윤택해졌다고 한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1792년에 자신들을 도와준 김원보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로 암벽 위에 불망비를 세웠고, 조정에서는 김원보의 공을 인정하여 가선대부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종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현포보 수로와 중건 불망비는 조선후기 김원보가 조성한 보(洑)와 수로(水路) 및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는 시혜비(施惠碑)이며,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와 주월리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순창의 현포 일대 들은 상평[윗들]과 하평[아랫들]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상평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하평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농민들이 매년 거듭되는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 받았다. 순창 현포에 살고 있던 김원보(金元寶)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洑)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고, 1736년(영조 12)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1747년(영조 23)에 김원봉을 종9품 능참봉(陵參奉)의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1792년(정조 16)에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시혜비를 세웠다. 이에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曹參判)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1차 수정

현포보 수로는 조선 후기 순창 현포에 살던 김원보(金元寶)의 제안으로 영조 12년(1736)에 조성되었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중건불망비는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세웠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농민들이 매년 거듭되는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 받았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봉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 받았다. → 흉작을 면치 못하였다.
    • 김원봉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현포보 수로는 현포 일대의 들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시설이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 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 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농민들이 매년 거듭되는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순창에 살던 김언립(金彦立)이 보를 처음 만들었다. 이후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중건할 것을 일러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정조 16년(1792)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이후 김세곤(金世)이 다시 증축하였고, 1912년도 다시 증축하였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수정사항 없음.

2차 수정

현포보 수로는 조선 후기 순창 현포에 살던 김원보(金元寶)의 제안으로 영조 12년(1736)에 조성되었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중건불망비는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세웠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