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해자(창원 진해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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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해자(垓子)는 성벽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방어시설의 하나로서 아주 이른 시기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방어시설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해자와 관련된 용어는 『조선왕조실록』에 해자(垓字), 갱감(坑坎), 호지(濠池), 참호(塹濠), 황지(隍池), 해자(海子), 지호(池壕), 해자(垓子), 호(壕) 등이 사용되고 있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해자(垓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웅천읍성에서는 길이 300m의 동벽과 남벽 해자가 확인되었다. 웅천읍성의 해자는 조선 세종 16년 (1434) 초축이 시작된 이후 총 3번 이상에 걸친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 및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 일부를 폐기하고 새로이 해자를 축조하였다. 웅천읍성 체성부와 해자의 이격거리는 동북벽이 12m, 동문지 옹성 주변 7.2~8.1m, 동남벽은 8m, 남벽 7.5m 이다. 해자의 폭은 남벽 해자는 상부 폭 4.3m, 하부 폭 4m으로서 최대 깊이 2.5m 이며, 동남벽 해자는 상부 폭 4.2~4.6m, 하부 폭 4m, 최대 깊이 3m, 동북벽 해자는 상부 폭 7~7.6m, 하부 6~6.5m, 최대 깊이 3.5m 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단면 U자형을 이룬다. 웅천읍성 해자의 석축 축조수법은 허튼층쌓기를 실시하였으며, 또한 축조 해자 바닥에는 전체적으로 돌이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목익을 설치한 반면에 증개축된 해자인 남쪽 구간에서는 해자벽에 붙어 약 1.2m 간격으로만 나오고 그 안쪽으로 목익이 확인된다. 또한 동문지 옹성 밖 해자 내부에서 조교가 확인된다.

수정 국문

초고

해자(垓子)는 주황(周隍), 구지(溝池), 외호(外壕), 호성하(護城河)로 지칭된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해자와 관련된 용어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해자(垓字), 갱감(坑坎), 호지(濠池), 참호(塹濠), 황지(隍池), 해자(海子), 지호(池壕), 해자(垓子), 호(壕) 등이 사용되고 있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해자(垓子)라는 기록이 보인다. 주로 성곽과 고분 등에서 발견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성곽의 외곽에 해자를 방어시설로 활용하여 성곽을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웅천읍성에서는 길이 300m의 동벽과 남벽 해자가 확인되었다. 웅천읍성의 해자는 세종 16년(1434) 축조가 시작된 이후 총 3번 이상에 걸친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 및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 일부를 폐기하고 새로이 해자를 축조하였다. 웅천읍성 체성부와 해자의 이격거리는 동북벽이 12m, 동문지 옹성 주변 7.2~8.1m, 동남벽은 8m, 남벽 7.5m 이다. 해자의 폭은 남벽 해자는 상부 폭 4.3m, 하부 폭 4m으로서 최대 깊이 2.5m 이며, 동남벽 해자는 상부 폭 4.2~4.6m, 하부 폭 4m, 최대 깊이 3m, 동북벽 해자는 상부 폭 7~7.6m, 하부 6~6.5m, 최대 깊이 3.5m 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단면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웅천읍성 해자의 석축 축조수법은 허튼층쌓기를 실시하였으며, 해자 바닥에는 돌이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목익을 설치하였으며 증개축된 해자인 남쪽 구간에서는 해자벽에 붙어 약 1.2m 간격으로 나오고 그 안쪽으로 목익이 확인된다. 또한 동문지 옹성 밖 해자 내부에서 조교가 확인된다.

1차 수정

해자는 성벽 주변을 둘러 땅을 파서 도랑을 내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이다.

웅천읍성에서는 동벽과 남벽에서 해자가 확인되었으며, 대체로 해자 바닥에 돌을 깔고 나무말뚝을 세운 후 다시 크기가 다른 돌들을 흐트려 쌓는 허튼층쌓기 수법으로 축조되었다.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총 3번 이상 증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폐기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였다.

동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12m 떨어져 조성되었으며, 현재 웅천-제포간 간선도로에 접해있다. 동남벽 해자는 상부 폭 4.2~4.6m, 하부 폭 4m, 최대 깊이 3m이고, 동북벽 해자는 상부 폭 7~7.6m, 하부 6~6.5m, 최대 깊이 3.5m에 이른다. 남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폭은 상부 4.3m, 하부 4m, 최대 깊이는 2.5m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해자의 조성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해자 성벽과 해자 내부시설에 대한 설명을 구분해서 제시.-> 웅천읍성에서는 동벽과 남벽에서 해자가 확인되었다. 해자의 벽은 크기가 다른 돌들을 흐트려 쌓는 허튼층쌓기 수법으로 축조되었다. 해자 바닥에는 돌을 깔고 적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말목을 세웠다.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총 3번 이상 증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폐기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였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성벽 주변을 둘러 땅을 파서 도랑을 내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 ‘성벽주변’은 위치 표현이 정확치 않고, 자연하천은 인공의 시설이 아니며, 해자는 물을 채운 시설을 뜻하므로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다시 크기가 다른 돌들을 흐트려 쌓는 허튼층쌓기 수법’ → 정보의 전달 필요성이 낮아보이므로 ‘바닥에 돌을 깔고 돌을 거칠게 쌓아 벽을 만들었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무말뚝’은 상부가 뾰족한 말뚝을 바닥에 촘촘하게 박아 적이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이므로 이러한 형태와 용도를 설명에 추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9째줄 ‘하부 6~6.5m’ --> ‘하부폭 6~6.5m)로 수정하는 것이 정확할 듯 합니다.

2차 수정

해자는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이다.

웅천읍성에서는 동벽과 남벽에서 해자가 확인되었다. 해자 바닥에는 돌을 깔고 적이 건너지 못하도록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웠으며, 해자의 벽은 크기가 다른 돌들을 줄을 맞추지 않고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총 3번 이상 증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폐기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였다.

동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12m 떨어져 조성되었으며, 현재 웅천-제포간 간선도로에 접해있다. 동남벽 해자는 상부 폭 4.2~4.6m, 하부 폭 4m, 최대 깊이 3m이고, 동북벽 해자는 상부 폭 7~7.6m, 하부 폭 6~6.5m, 최대 깊이 3.5m에 이른다. 남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폭은 상부 4.3m, 하부 4m, 최대 깊이는 2.5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