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동호정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 가선대부오위장(嘉善大夫五衛將)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동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단동의 중층 누각건물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호정은 호반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건물로서 화림동의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그 아래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가 있어 수백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널찍한 암반으로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을 갔던 장만리(章萬里)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것이다. 1936년에 중수를 하였으며, 이후 지붕과 단청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장만리는 1583년에 관직에 나아갔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선조를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정자가 세워진 곳은 장만리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지내던 곳으로, 그의 9대손인 장재헌(章載憲) 등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으며, 정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동호(東湖)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1차 수정
동호정은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1567~1608 재위)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정자가 세워진 화림동 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 세 곳의 정자가 남아있으며, 그중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1936년에 중수하였고, 이후에도 지붕과 단청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동호정은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1936년에 중수하였다.
- 중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한데, 팔작지붕에 이익공으로 공포를 구성한 중층 누각이며 지붕과 단청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동호정(東湖亭)은 한자 병기
-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1567~1608 재위)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 장만리가 임진왜란 당시 선조(1567~1608 재위)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 수정
-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 -->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 으로 수정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고 전한다.
-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어,
2차 수정
동호정은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1567~1608 재위)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정자가 세워진 화림동 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 세 곳의 정자가 남아있으며, 그중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1936년에 중수하였고, 이후에도 지붕과 단청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