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한언 묘와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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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안

조선시대의 문신 한언(韓堰, 1448~1492)과 부인 밀양박씨의 무덤이 있는 묘역과, 묘역을 알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한언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가 왕위에 오르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한명회(韓明澮, 1415~1487)의 동생 한명진(韓明溍, 1426~1454)의 아들로, 청주한씨 중 부천 지역에 처음 정착하였다. 예종 1년(1469)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성종 23년(1492) 45세의 나이로 사신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보호석을 두른 두 개의 봉분 중 왼쪽이 한언의 무덤이다.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등의 석물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1984년 문중에서 묘역 정화작업을 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고 한다.

묘역 왼쪽에는 묘표로 알려진 비석이 있다. 비석은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뿔이 없는 용을 새겨 장식한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면에는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글씨[청평군한공지묘(淸平君韓公之墓)]를 새겼다. 현재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한편 묘역에 세워져 있는 석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한언이 죽자 양국의 임금들은 그를 애도하며 관리를 파견해 유해가 조선으로 무사히 운구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었다. 이때 파견된 중국의 관리가 묘역 조성에 쓰일 석물들을 함께 가져왔고, 이것이 현재 묘역에 있는 묘표와 문인석이라고 한다. 실제로 문인석의 복장은 중국의 복식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묘표 역시 비교적 작은 크기와 비석의 형태가 중국풍 양식을 따르고 있다.

한언 부부의 묘 위에는 경기도 양주에서 2008년에 이장해 온 한명진과 부인 안동권씨의 합장묘가 있다. 또, 아래쪽에는 도시 개발 과정에서 선영 보존을 위해 노력한 후손들에 의해 2013년 옮겨온 한준의 묘와 신도비(향토유적 제3호)가 자리하고 있다.

  • 한언의 아버지 한명진(1426~1454, 이양공)는 한명회의 동생이며, 양도공파의 중시조이다. 1453년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운 공을 인정받아 정난공신 3등에 책봉되었지만, 이듬해에 별세했다.
  • 한언의 운구를 책임졌다고 하는 중국 관리의 이름이 확실하지 않고(임전/임벽 등등), 아들 한홍윤도 부친의 유해를 운구하는 일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인명은 생략하였음.

1차 수정

조선시대의 문신 한언(韓堰, 1448~1492)의 묘와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묘표이다. 묘표는 묘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으로, 죽은 이의 이름과 행적 등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운다.

한언의 아버지 한명진(韓明溍, 1426~1454)은 형인 한명회(韓明澮, 1415~1487)와 함께 조선 제7대 왕 세조(1455~1468 재위)가 왕위에 오르는 데 이바지하여 공신이 되었다. 아버지의 공로로 한언은 과거를 치르지 않고 벼슬길에 올랐지만, 예종 1년(1469) 진사시에서 장원급제하고 성종 5년(1474)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주요 관직을 지냈다. 성종 23년(1492)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언은 청주한씨 중 처음으로 부천 지역에 정착한 인물이며, 이후 그의 후손들이 부천시 전역에 걸쳐 살고 있다.

한언의 묘는 부인 밀양박씨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으며 왼쪽이 한언의 묘이다. 봉분 아랫부분에 돌을 둘렀는데, 이러한 형태는 조선 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묘 앞에는 묘비,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향로를 올려놓는 향로석, 한 쌍의 돌기둥인 망주석, 불을 밝히는 장명등, 문인 모양의 문인석을 갖추었다.

묘표는 묘역 앞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다.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용을 새겨 장식한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면에는 ‘청평군한공지묘(淸平君韓公之墓)’라고 새겼다.

한언 묘역의 묘표와 문인석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언이 죽자 명나라 황제와 조선의 임금은 그를 애도하며 유해가 조선으로 무사히 운구될 수 있도록 지원하였으며, 이때 묘에 쓸 석물들을 한언의 유해와 함께 가져왔다고 한다. 실제로 문인석의 복장은 중국 복식에 가까운 모습이며, 묘표 역시 비교적 작은 크기와 비석의 형태가 중국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한언 부부의 묘 위에는 경기도 양주에서 2008년에 이장해 온 한명진과 부인 안동권씨의 합장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