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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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국탄(菊灘) 김시정(金始精)의 셋째 아들인 치헌(恥軒) 김영운(金永運, 1765~1841)이 조선 정조(正祖) 9년(1785)에 분가(分家)할 때 지은 집이다. 당호(堂號)는 김영운의 호를 따라 붙였다.

원래 건물이 위치하고 있던 마을의 이름은 국탄리로서 오지였다. 마을 입구에 나이가 400여년의 회나무와 회화나무가 서 있었으며, 집 앞에는 철봉이라는 안산(安山)이, 뒤로는 야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러한 마을의 중심부에 본 건물이 정남에서 동으로 15도 정도 틀어진 방향으로 앉아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이 곳에 옮겼다.

건물은 ‘二’자형으로 정침(正寢), 사랑채는 모두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구성은 남부지방의 일반적인 건물 형태인데 유독 부엌이 오른쪽에 위치한 점이 특이하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국탄(菊灘) 김시정(金始精)의 셋째 아들인 치헌(恥軒) 김영운(金永運, 1765~1841)이 1785년(정조 9)에 분가(分家)할 때 지은 집이다.

집의 이름은 김영운의 호를 따라 치헌이라 부르게 되었다. 집을 짓는데 쓴 재목은 인근의 맏집인 국탄댁(菊灘宅)을 짓고 남은 것으로 충당하였다.

원래 치헌은 임동면 지례동의 국탄댁 옆에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현재의 위치인 천전리로 옮겼다. 본래 의성김씨 후손과 그들의 건축문화유산은 임하지역과 임동지역에 주로 분포하였는데, 댐의 건설로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二’자형의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따로 있으며, 남부 지방 건축물의 일반적인 유형을 따르고 있지만 유독 부엌이 오른쪽에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1차 수정

치헌은 국탄 김시정(菊灘 金始精, 1737~1805)의 셋째 아들인 김영운(金永運, 1765~1841)이 1785년에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집의 이름은 김영운의 호를 따라 지은 것이다.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의 경우 장남은 대대로 종택에서 살고 차남 이하는 재산 일부를 물려받아 분가하곤 하였다. 김시정 역시 1757년에 분가하면서 국탄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호)을 지었는데, 이때 집을 짓고 남은 목재를 보관해 두었다가 김영운이 치헌을 지을 때 목재로 주었다고 한다.

원래 치헌은 국탄댁과 함께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본래 의성김씨 후손과 그들의 건축문화유산은 임하지역과 임동지역에 주로 분포하였는데, 댐의 건설로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