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청도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이곳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조 시인인 이호우와 그의 여동생 이영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생가는 1910년경에 건축된 근대기 단층 한옥 기와집으로 건물 배치는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조 시인인 이호우(1912~1970년)는 ‘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휴화산’ ‘달밤’ 등 정한을 바탕으로 주옥같은 시조를 남김으로써 한국 현대시조의 격을 한 차원 높였으며 그 여동생 이영도는(1916~1976) ‘보릿고개’ ‘달무리’ 등 민족 고유의 정한을 단아하고 섬세한 가락으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이 건물은 현대 한국 문학사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시조 시인 남매의 생가라는 점에서 문화사와 향토사적 가치가 높다.
수정 국문
초고
시조시인 남매인 이호우(李鎬雨, 1912∼1970)와 여동생인 이영도(李永道, 1916∼1976)의 생가이다. 이호우는 1939년 『동아일보』 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 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휴화산(休火山), 달밤 등이 있다. 고전적 시조를 현대의 감각과 정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영도는 1945년 대구의 문예지 『죽순(竹筍)』에 ‘제야(除夜)’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보릿고개, 달무리 등 민족 고유의 정한을 섬세하고 단아한 가락에 담아냈다.
1910년 경 건축된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사랑마루, 사랑방, 작은 사랑방, 고방이 있으며,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좌로부터 안방, 대청, 작은방, 부엌이 있다.
1차 수정
시조시인 남매인 이호우(李鎬雨, 1912~1970)와 이영도(李永道, 1916~1976)의 생가이다.
이호우는 1939년 『동아일보』 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 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휴화산(休火山), 달밤 등이 있다. 고전적 시조를 현대의 감각과 정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영도는 1945년 대구의 문예지 『죽순(竹筍)』에 ‘제야(除夜)’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보릿고개, 달무리 등 민족 고유의 정한을 섬세하고 단아한 가락에 담아냈다.
1910년 경 건축된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사랑마루, 사랑방, 작은 사랑방, 고방이 있으며,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좌로부터 안방, 대청, 작은방, 부엌이 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청도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는 1910년경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우리나라 근현대기 대표적인 시조 시인 남매인 이호우와 이영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 우진각 기와 지붕의 사랑채와 안채는 서로 직교하는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一자형의 사랑채는 사랑방과 사랑마루, 고방으로 구성된 정면 5칸 건물이고, 一자형의 안채는 안방, 대청, 작은방, 부엌으로 구성된 정면 4칸의 건물이다. 이호우(李鎬雨, 1912∼1970)는 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휴화산, 달밤 등의 작품을 남겼고, 고전적 시조를 현대의 감각과 정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생 이영도(李永道, 1916∼1976)는 보릿고개, 달무리 등의 작품을 남겼고, 민족 고유의 정한을 단아하고 섬세한 기록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한국 시조문학의 현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조 시인 남매의 생가라는 점에서 한국 현대문학사와 향토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건물이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없음.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오누이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李鎬雨, 1912~1970)와 이영도(李永道, 1916~1976)가 유년시절을 보낸 생가이다.
2차 수정
이 집은 1910년경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오누이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李鎬雨, 1912~1970)와 이영도(李永道, 1916~1976)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호우는 1939년 『동아일보』 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 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휴화산(休火山), 달밤 등이 있다. 고전적 시조를 현대의 감각과 정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영도는 1945년 대구의 문예지 『죽순(竹筍)』에 ‘제야(除夜)’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보릿고개, 달무리 등 민족 고유의 정한을 섬세하고 단아한 가락에 담아냈다.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서로 직교하는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사랑마루, 사랑방, 작은 사랑방, 고방이 있으며,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좌로부터 안방, 대청, 작은방, 부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