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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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불상은 높이 276㎝의 석조 석가여래좌상으로 대비사(大悲寺) 골짜기 입구의 보호각 속에 모셔져 있다. 몇 차례의 화재와 인위적인 파손을 당해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지금의 모습으로도 예술적 안목과 세련된 솜씨를 느낄 수 있다. 얼굴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박력 있는 모습,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몸에 밀착된 법의 등에서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수법을 볼 수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 연꽃모양으로 당대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은 석굴암(石窟庵) 불상과 그 양식이 비슷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불상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석조여래상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이다.

불상은 8각의 연꽃 좌대 위에 모셔져 있다. 얼굴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목에 번뇌와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를 표현했다. 어깨와 가슴은 넓고 당당하며 허리는 잘록하여 전체적으로 강건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왼쪽 어깨에 법의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을 하고 있으며,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이 손 모양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한다.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76m이며, 불상의 높이는 1.54m이다.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훼손 정도가 심하지만, 손 모양과 법의 형식 등이 경주 석굴암본존불(국보 제24호)과 유사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불조각으로 높이 평가된다.

1차 수정

이 불상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석조여래상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이다.

불상은 8각의 연꽃 좌대 위에 모셔져 있다. 얼굴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를 표현했다. 어깨와 가슴은 넓고 당당하며 허리는 잘록하여 전체적으로 강건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 손 모양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76m이며, 불상의 높이는 1.54m이다.

훼손 정도가 심하지만,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내용 추가) 운문산 북쪽 계곡부 미륵댕이 마을의 보호각 내에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이 있는 곳은 통일신라시대 절터로서, 운문산 내에 있던 ‘五岬寺’중 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불상은 팔각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화재 피해로 인해 얼굴, 신체 각 부분, 대좌 등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76m이며, 불상의 높이는 1.54m이다. 신체는 양감이 풍부하며, 허리의 굴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이며, 오른손을 무릎 위에, 왼손을 복부에 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옷주름은 불규칙하지만 자연스럽다. 불상 아래의 대좌는 삼단팔각연화대좌이지만, 상대석과 중대석 대부분이 파손되었고 하대석 하단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대석과 상대석에는 각각 양감이 뚜렷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중대석에는 세로로 긴 안상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이 불상은 8세기 후반~9세기 전반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이후 그 양식과 형식을 모방하여 제작된 불상들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비록 훼손되었지만 일제강점기 조사 자료에 수록된 원래 모습을 참고하면 작품성이 매우 뛰어난 불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안내문에서 항마촉지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상이 지닌 의의, 이 불상이 이곳에 있는 이유, 제작 시기 등에 대한 ‘가치’와 관련된 정보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함.
  2. 분야별 자문위원2
    • 이 석조여래좌상으로 대비사(大悲寺) 골짜기 입구의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1928년 큰 화재로 얼굴, 대좌 등에 손상을 크게 입었다. 당당한 어깨에 허리는 잘록하며,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가리키는 촉지인을 하고 왼손은 다리 위에 둔 항마촉지의 손 모습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어 옷을 입고 몸에 밀착되게 옷주름을 간략하게 표현했으며, 다리 사이에 부채꽃 모양으로 옷자락이 펼쳐져 있다. 전체적으로 경주 석굴암 본존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당당함이 느껴지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불상은 8각의 연꽃 좌대 위에 모셔져 있다→ 불상은 8각의 연꽃 좌대 위에 봉안되었다
    • 이 손 모양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하는 ‘항마촉지인’이다.

2차 수정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상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이다.

불상은 팔각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1928년 큰 화재로 인해 얼굴, 신체 각 부분, 대좌 등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76m이며, 불상의 높이는 1.54m이다. 신체는 양감이 풍부하며, 허리의 굴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 손 모양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