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
기존 국문
제주 월령리 선인장[학명: Opuntia ficus-indica var. saboten] 군락은 선인장의 자생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국내 유일의 선인장 야생 군락이다.
선인장이 이곳에 자라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라 가지 설이 있는데, 선인장 씨앗이 원산지로 알려진 멕시코에서 해류(쿠루시오 난류)를 타고 이곳에 밀려와 모래땅이나 바위틈에 기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월령리 주민들은 뱀이나 쥐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 울타리인 돌담 옆에 선인장을 심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의 선인장은 건조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에 강하여 가뭄에도 고사하는 일이 없고, 6~7월이면 노란 꽃이 피고 11월에는 열매가 보라색으로 익는다. 특히 백년초라 불리는 열매는 소화기나 호흡기 질환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으며 이 마을의 고소득원이 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선인장의 모양이 손바닥과 같다고하여 ‘손바닥 선인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선인장 군락은 선인장의 지리적 분포상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보호해야 할 우리의 귀중한 자연유산이다.
수정 국문
초고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제주도 서북쪽 해안가에 약 6,914㎡ 면적으로 분포하는 국내 유일의 선인장 자생지이다. 1972년 식물학자 부종휴(1926~1980)가 발견하였고, 선인장의 자생상태를 잘 보여주는 야생 군락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선인장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해졌다고 하며 백년초 또는 손바닥선인장(Opuntia ficus-indica)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23년 유전자 분석 결과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해안선인장(Opuntia stricta)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령리에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게 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19~20세기에 한 할아버지가 바다에서 선인장을 발견해 이웃 주민들과 함께 마을 돌담 틈 사이에 심은 것이 퍼졌다고도 하고, 일제강점기 때 어느 원양선원이 적도 부군의 남양군도에서 가시 돋은 풀을 가지고 와 퍼뜨렸다고도 한다. 또는 선인장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으로부터 밀려와 자생하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차 수정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은 제주도 서북쪽 해안가에 약 6,914㎡ 면적으로 분포하는 선인장 자생지이다. 1972년 식물학자 부종휴(1926~1980)에 의하여 알려졌다. 해안선 200m 바위틈에 다년생 초본 선인장이 넓게 분포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예로부터 민간약으로 쓰이고 쥐나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돌담에 심는 등 주민들의 유용식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민속적 가치가 크다. 월령리의 선인장 군락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선인장은 Opuntia속 Opuntia stricta로 북아메리카 기원 분류군에 속한다. 대개 높이 1m 미만으로 자라며, 계란형의 엽상경*은 길이가 약 5~25cm이고 약 0.5~5cm 길이의 노란색 가시가 있다. 6월 중순에서 8월까지 노란색의 꽃이 피고, 가을에 자주색의 열매를 맺는다.
월령리에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게 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19~20세기에 한 할아버지가 바다에서 선인장을 발견해 이웃 주민들과 함께 마을 돌담 틈 사이에 심은 것이 퍼졌다고도 하고, 일제강점기 때 어느 원양선원이 적도 부근의 남양군도에서 가시 돋은 풀을 가지고 와 퍼뜨렸다고도 한다. 또는 선인장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으로부터 밀려와 자생하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 엽상경(葉狀莖): 잎 모양의 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