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전운상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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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그림은 전운상(田雲祥, 1694∼1760)의 초상화이다.

전운상은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무신으로 1717년 24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함경도 부사로 있을 때 어진 정치를 베풀어 왕의 표창을 받았으며, 전라좌수사로 재직할 때에는 수군의 특수함정인 해골선(海鶻船)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이 그림은 감색 조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전신좌상이다. 관복은 호랑이무늬가 있는 흉배를 가슴에 붙이고 그 위에 허리띠를 둘렀다. 얼굴은 붉은색으로 엷게 칠하고 수염은 작은 붓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였는데, 눈이 날카롭고 얼굴에 살이 없어 무인의 특징을 잘 담아내었다.

그림을 그린 작자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동생인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영정 및 한유도(閒遊圖)의 화법과 비슷하여 18세기 화원인 김희겸(金喜謙)이 비슷한 시기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조선 후기의 무신인 전운상(田雲祥, 1694∼1760)의 초상화이다.

전운상은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1717년 24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함경도 부사로 있을 때에는 어진 정치를 베풀어 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전라좌수사로 재직할 때에는 수군의 특수함정인 해골선(海鶻船)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전운상의 초상화는 가로 88㎝, 세로 136.5㎝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호랑이 무늬가 있는 흉배를 가슴에 붙이고 그 위에 허리띠를 둘렀으며,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붉은색으로 엷게 칠하고 수염은 작은 붓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날카로운 눈빛과 반듯한 자세 등을 통해 뛰어난 지략과 당당한 풍모를 갖춘 무인의 모습을 잘 담아내었다. 보존 상태가 대체로 양호한 편이고, 조선시대의 족자 표구도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초상화가 그려진 시기나 화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동생인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가 그려진 1748년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전운상의 초상화는 가로 88㎝, 세로 136.5㎝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전운상 초상화의 크기는 가로 88㎝, 세로 136.5㎝이고,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화면에는 표피(豹皮)가 덮힌 의자에 검은색 조복을 입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당당한 모습의 전운상을 전신상으로 그렸다. 마주잡은 두 손은 소매자락 속으로 넣어 보이지 않고 팔자형태로 벌어진 발은 의답(椅踏) 위에 놓여 있다.
    • <전운상 초상화>는 동생인 <전일상의 초상화(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와 표현된 기법이 달라 김희겸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작시기 역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관모의 형태와 인물의 표현에 사용된 시대적인 특징으로 미루어 18세기 중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2차 수정

조선 후기의 무신인 전운상(田雲祥, 1694∼1760)의 초상화이다.

전운상은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1717년 24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함경도 부사로 있을 때에는 어진 정치를 베풀어 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전라좌수사로 재직할 때에는 수군의 특수함정인 해골선(海鶻船)을 제작하였다.

전운상의 초상화는 가로 88㎝, 세로 136.5㎝이고,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호랑이 무늬가 있는 흉배를 가슴에 붙이고 그 위에 허리띠를 둘렀으며,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붉은색으로 엷게 칠하고 수염은 작은 붓으로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날카로운 눈빛과 반듯한 자세 등을 통해 뛰어난 지략과 당당한 풍모를 갖춘 무인의 모습을 잘 담아내었다. 보존 상태가 대체로 양호한 편이고, 조선시대의 족자 표구도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초상화가 그려진 시기나 화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동생인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초상화(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가 그려진 1748년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