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전계대원군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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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전계대원군 이광(李, 1785~1841)과 부인 전주 최씨의 합장묘와 신도비이다.

전계대원군은 조선 철종(1849~1863 재위)의 아버지다. 영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도세자, 아버지는 은언군이다. 정조 10년(1786) 은언군이 홍국영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자 그곳에서 자랐다. 왕족이지만 일반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늦은 나이에 최수창의 딸과 혼인하여 회평군과 원평군을 낳았다. 원범은 후처(염성화의 딸) 소생으로 누동궁에서 태어났다. 원범의 즉위 후에 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처음에는 양주군 신혈면 진관에 안장되었다가, 철종 7년(1856)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묘는 봉분 하단에 호석을 둘렀고, 묘비와 상석·향로석·장명등·망주석·무인석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 주위로 나지막한 담인 곡장을 쌓았다. 묘비의 앞면에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가 함께 묻혔다는 어필을 새겼으며, 뒷면에는 숭정 기원후 4번째 병진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건립시기가 1856년(철종 7)임을 알 수 있다. 신도비는 철종 2년(1851)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왕명으로 조두순(趙斗淳, 1796~1870)이 지었다.

수정

전계대원군 이광(李, 1785~1841)과 부인 전주 최씨의 합장묘와 신도비이다.

전계대원군은 조선 영조(1724~1776 재위)의 증손이고 철종(1849~1863 재위)의 아버지다. 정조 10년(1786) 아버지인 은언군 이인(恩彦君 李䄄, 1754~1801)이 역모 사건에 연루된 후 강화도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자랐다. 왕족이지만 일반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으며, 늦은 나이에 최수창의 딸과 혼인하여 회평군과 원평군을 낳았다. 후에 철종이 되는 셋째 아들 원범은 후처(염성화의 딸) 소생이다. 원범의 즉위 후에 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처음에는 양주군 신혈면 진관(지금의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안장되었다가, 철종 7년(1856)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묘는 봉분 하단에 호석을 둘렀고, 묘비와 상석·향로석·장명등·망주석·무인석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 주위로 나지막한 담인 곡장을 쌓았다. 묘비는 철종 7년(1856)에 세운 것으로, 앞면에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가 함께 묻혔다는 어필을 새겼다. 신도비는 철종 2년(1851)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왕명으로 조두순(趙斗淳, 1796~1870)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