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장복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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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장복리 마을의 북쪽 하천 옆에 있는 산의 경사지 아래에 위치하는데, 원래 건너편 둑 위에 있었던 것을 주민들이 옮겨 놓았다고 한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약간 다듬은 2매의 넓은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1매의 하대갑석(下臺甲石)을 올려 놓고 하대중석(下臺中石)은 4매의 면석(面石) 중 2매만이 남아있다. 상대갑석(上臺甲石)은 부연(浮椽)이 표현되어 있고, 각 층의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탑신의 지붕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탑이 원래의 자리에서 옮겨지면서 탑의 원형이나 규모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3단의 층급 받침과 지붕돌의 형태로 보아 고려시개에 조성된 탑으로 보여진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장복리의 이 석탑은 현재 바닥돌과 단층 기단의 부재 각 2매, 몸돌 3개, 지붕돌 2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본래 3층 석탑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뒷부분이 땅에 묻힌 채 기단 부재 2매와 2층까지의 몸돌 및 지붕돌만 훼손이 심한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을 2010년 이후 주변을 정비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도록 보수했다.

기단의 면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2층 지붕돌에 3단의 받침이 확인된다.

건너편 제방 위에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데, 언제 옮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붕돌이 두툼하고 3단의 받침을 두고 있는 등 탑의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 탑 보수 시점 확인 필요 – 블로그 사진을 보면, 2010년 12월 경 주변 정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탑의 부재를 교체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음 ; 예산군 2015 주요 업무 추진계획서 중 장복리 삼층석탑 보수를 위한 예산 책정 내역 확인되므로 2015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된 것으로 추정.
  • 기단은 2매의 부재만 있는 상태 그대로 두고, 땅에 묻혀 있었던 쪽의 바닥돌(지대석)과 2층, 3층 몸돌은 새 부재로 바꾸었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장복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건너편 제방 위에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데, 언제 옮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원래는 3층으로 만들어졌던 석탑이지만, 지금은 바닥돌, 단층 기단 일부, 2층의 몸돌과 지붕돌만 남아 있다. 탑의 뒷부분이 땅에 묻힌 채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있던 것을 2010년 이후 주변을 정비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도록 보수했다. 기단의 면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2층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이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원래는 3층으로 만들어졌던 석탑이지만, 지금은 바닥돌, 단층 기단 일부, 2층의 몸돌과 지붕돌만 남아 있다. -> 현재 상, 하 이중 기단 위에 탑신부를 2층으로 올려 복원한 상태이지만 원래 형태가 아니며, 1층 옥개석과 3층 탑신석은 원래 부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상층기단면석 역시 2매만 남아 있다. 탑은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남아 있는 부재들을 모아 쌓은 것으로 원 부재가 아닌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명시해야 하며, 어떤 것이 원 부재인지, 어떤 것이 원 부재가 아닌지를 언급해 줄 필요가 있다.(탑이 원래 이런 형태였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음)
    •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된다고 하나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았음.
    • -> 이 탑은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작은 크기, 부연이 있는 기단 갑석, 기단면석의 짜임새, 2층 옥개석에 보이는 3단 옥개받침 등 요소로 보아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된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축조물로 불상과 함께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물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 장복리 삼층석탑은 원래 건너편 둑 위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주민들이 옮겨 놓았다.
    • 이 탑은 3층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며,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바닥돌, 기단 일부, 2층의 몸돌과 지붕돌만 원 부재로 보인다. 탑의 뒷부분이 땅에 묻힌 채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있던 것을 2010년 무렵 주변을 정비하고 지금의 3층의 형태로 보수했다.
    • 몸돌이 급격히 줄고, 갑석이 두꺼워졌으며, 돌을 다듬은 모습이 형식화 되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장복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건너편 제방 위에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데, 언제 옮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원래는 3층으로 만들어졌던 석탑이지만, 지금은 바닥돌, 단층 기단 일부, 2층의 몸돌과 지붕돌만 일부 남아 있다. 탑의 뒷부분이 땅에 묻힌 채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있던 것을 2010년 이후 주변을 정비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도록 보수했다. 기단의 면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2층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지붕돌 받침이 있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장복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건너편 제방 위에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데, 언제 옮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탑은 원래 3층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며,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바닥돌, 기단 일부, 2층의 몸돌과 지붕돌만 원래의 부재로 보인다. 탑의 뒷부분이 땅에 묻힌 채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있던 것을 2010년 이후 주변을 정비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도록 보수했다. 기단의 면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2층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이 있다.

  • 탑 보수 시점 확인 필요 – 블로그 사진을 보면, 2010년 12월 경 주변 정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탑의 부재를 교체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음. 예산군 2015 주요 업무 추진계획서 중 장복리 삼층석탑 보수를 위한 예산 책정 내역이 확인되므로 2015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된 것으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