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익종 태봉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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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익종(1809~1830)의 태(胎)를 묻은 곳이다. 익종은 조선 제23대 순조의 아들이고, 제24대 헌종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이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827년부터 부왕인 순조를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돌보았다. 4년 후 향년 22세로 죽었다. 시호는 효명孝明이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으로 추존(追尊)하였다.

태는 출산 후 배출되는 태반(胎盤)과 탯줄 모두를 말한다. 태를 좋은 땅에 묻으면 태의 주인이 지혜롭게 될 뿐만 아니라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왕실에서는 높고 정결한 곳을 태를 묻기에 좋은 땅으로 여겨, 산봉우리 정상이 태실(胎室)을 만들 장소로 선택되었다.

태의 주인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 처음에 조성한 태실 위에 다양한 석물을 더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익종 태실의 석조물은 연엽주석 2기, 귀롱대석 1기, 옹석 1기, 개첨석 1기, 중동석 1기, 연엽동자석 1기, 면상석 2기, 우전석 3기, 우상석 8기, 횡죽석 1기, 면전석 3기, 면상석 2기, 하마비 1기 등이다.

익종의 태실은 일제 강점기 전국의 태실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해체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당시 육군 제5군단에서 남아 있던 석조물을 인수하여 보관하였다고 전한다. 1977년 소공원이 조성되면서 익종 태실 석조물을 이전하였다. 익종의 태실을 조성할 때의 의식절차를 기록한 의궤(儀軌) 2건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정

익종(효명세자, 1809~1830)의 태(胎)를 묻은 곳이다.

익종은 조선 순조(1800~1834 재위)의 아들이며 헌종(1834∼1849 재위)의 아버지이다. 순조 12년(1812)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순조 27년(1827)부터 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지만 4년 후에 향년 22세로 죽었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으로 추존하였다.

태실은 왕자·왕녀의 태를 묻은 무덤이다. 옛사람들은 태를 소중하게 여겨 좋은 땅에 묻으면 태의 주인이 지혜롭게 될 뿐만 아니라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왕실에서는 높고 정결한 곳을 태를 묻기에 좋은 땅으로 여겨, 산봉우리 정상을 선택하였다.

이 태실은 일제강점기 전국의 태실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해체되었다. 남아 있던 연엽주석과 옹석 등 석조물은 한국전쟁 이후 당시 육군 제5군단에서 인수하여 보관하였다고 전해지며, 1977년 소공원이 조성될 때 이전하였다. 익종의 태실 조성 의식절차를 기록한 의궤 2건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