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영춘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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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전북 지역의 대지주였던 구마모토가 1920년경 지은 별장 저택으로 해방 후에는 구마모토 농장의 진료소장으로 있었던 이영춘 박사(李永春, 1903~1980)가 살았던 가옥이다. 이영춘 박사는 1929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1935년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구마모토 농장의 직영 의료원인 자혜진료소에 부임했다. 해방 후 개정 중앙병원, 한국농촌위생원, 개정 간호전문대학, 개정 뇌병원, 시그레이브 기념병원, 일심·일맥영아원 등 수많은 학교와 의료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였다.

이영춘 가옥은 단층의 목조 건축물로 서구식·일식·한옥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집이다, 외형은 유럽의 주거형식을 띄고 있으며, 내부는 일본식 중복도형을 바탕으로 일본식 다다미방과 서양식 응접실, 한옥의 온돌방이 결합되어 있다. 샹들리에를 비롯한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당시 이 집의 건축비가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이영춘 가옥은 근대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자 일본인에 의한 토지 점탈과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사업을 동시에 보여주는 근대문화유산이다.

1차 수정

이 집은 전북 지역의 대지주였던 구마모토가 1920년경 지은 별장 저택으로 해방 후에는 구마모토 농장의 진료소장으로 있었던 이영춘 박사(李永春, 1903~1980)가 살았던 가옥이다.

이영춘 박사는 1929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1935년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구마모토 농장의 직영 의료원인 자혜진료소에 부임했다. 해방 후 개정 중앙병원, 한국농촌위생원, 개정 간호전문대학, 개정 뇌병원, 시그레이브 기념병원, 일심·일맥영아원 등 수많은 학교와 의료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였다.

이영춘 가옥은 단층의 목조 건축물로 서구식·일식·한식의 건축 양식이 절충된 집이다, 외형은 유럽 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내부는 일본식 중복도형을 바탕으로 일본식 다다미방과 서양식 응접실, 한옥의 온돌방을 갖추고 있다. 샹들리에를 비롯한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당시 이 집의 건축비가 조선총독부 관저의 건축비와 비슷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이영춘 가옥은 근대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자 일본인에 의한 토지 점탈과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사업을 동시에 보여주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이영춘 가옥은 일제강점기 전북 지역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였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의 별장으로 지어졌고, 광복 후에는 구마모토 농장의 자혜진료소장을 역임하였던 이영춘(李永春, 1903∼1980) 박사가 거주하였다.
    • 이영춘 가옥은 일식 주택의 기본적인 공간 구성에 서구식 주택의 응접실과 한식 주택의 온돌방이 결합된 단층 목조 주택으로 정교한 실내 장식과 가구 뿐만아니라 천연 슬레이트 지붕과 자연석과 목재로 마감한 서구식 외관이 특징적이다.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구마모토 농장에 부임하였던 이영춘 박사는 광복후 지역에 남아 농촌위생연구소와 개정중앙병원을 개원하여 농촌의 위생 문제와 농민의 질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해 헌신하였다.
    • 주택의 독특한 외관과 재료, 공간 구성이 갖는 건축사 측면에서의 가치와 함께 일제강점기 농업 수탈의 현장이며 동시에, 지역의 의료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이영춘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건축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없음.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이영춘박사(李永春, 1903~1980)가 살았던 가옥이다.
    • 이영춘박사는 1929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1935년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최초의 의학박사로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병원과 학교, 영아원 등 의료 사회복지시설을 세우며 국내 처음으로 양호실을 만들었고 농민 의료보험도 도입했다.

2차 수정

이 집은 일제강점기 전북 지역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였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의 별장으로 지어졌고, 광복 후에는 구마모토 농장의 진료소장을 역임하였던 이영춘(李永春, 1903∼1980) 박사가 거주하였다.

이영춘 박사는 1929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1935년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의 의학박사로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역할을 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병원, 학교, 영아원 등 의료 사회복지시설을 세우며 국내 처음으로 양호실을 만들었고 농민 의료보험도 도입했다.

일식 주택의 기본적인 공간 구성에 서구식 주택의 응접실과 한식 주택의 온돌방이 결합된 단층 목조 주택이다. 정교한 실내 장식과 가구 뿐만 아니라, 천연 슬레이트 지붕과 자연석 및 목재로 마감한 서구식 외관이 특징적이다. 당시 이 집의 건축비가 조선총독부 관저의 건축비와 비슷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이영춘 가옥은 근대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을 보여주는 건축물이자, 일본인에 의한 토지 점탈과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사업을 동시에 보여주는 근대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