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범영 선생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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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이자 교육자 이범영(1890-1955)의 공적비이다. 선생은 본관이 전주이며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에 고향에 청성학교를 설립하여 충의를 교훈으로 민족혼을 고취했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 3.1학당 설립운동과 대동청년당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 지하 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포천소비조합을 창립했고 그 후 강화학교, 김천 광명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8.15 해방 후 한국독립당의 창당 발기, 영양군수, 병산중학교장 등을 거쳐 고향 마을에 화산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김창숙(1879~1962) 등과 함께 이승만의 옳지 않음을 규탄해 한때 옥고를 치렀다. 1963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공적비는 1982년 포천 유지들의 정성으로 건립되었다.

수정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이자 교육자 이범영(李範英, 1890~1955)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82년에 세운 비이다.

이범영은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하고 고향인 이곳 포천에 청성학교를 설립하여 충의를 교훈으로 민족혼을 고취하는 교육사업을 실시했다.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 3.1학당 설립운동과 대동청년당 결성에 참여하여 항일 지하 운동을 전개했다. 1928년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포천소비조합을 창립했고, 그 후 강화학교, 김천 광명학교 등에서 민족교육에 전념했다. 8.15 해방 후 한국독립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영양군수·병산중학교장 등을 거쳐 고향 마을에 화산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성균관대학교를 세운 김창숙(金昌淑, 1879~1962) 등과 함께 이승만의 옳지 않음을 규탄해 한때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63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