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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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불상은 천연 바위에 새겨진, 높이 3m의 마애불 입상으로 붉은 바위 색이 매우 인상적이다. 발을 좌우로 벌리고 연꽃대좌 위에 서 있는 이 불상에는 신라 말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가늘고 긴 눈, 작은 입, 도드라진 코 등이 묘사된 얼굴은 미소를 띠었음에도 매우 형식적이다. 또한 넓은 어깨, 늘씬한 하체, 붙인 듯한 팔과 U자형의 규칙적인 옷의 주름, 좌우로 힘없이 표현된 옷자락 등 갖가지 세부표현에서도 신라 말과 고려 초 불상 조성의 기법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세련된 신라시대의 조각이 점차 형식적으로 변해가던 시기의 불상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는 마애불의 하나이다.

수정 국문

초고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磨崖)는 바위에 새긴다는 뜻이고, 여래(如來)는 ‘진리에 도달한,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로 부처를 이르는 10개의 존칭 중 하나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암사에서 이 불상을 마의태자불이라고 부르는데, 마의태자가 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전설과 마의태자를 추모했던 신라 도공의 후손이 태자의 모습을 그리며 조각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불상은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는 세 개의 줄 삼도(三道)가 있으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는 몸 앞에서 U자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선정(禪定)에 들 때의 손가짐인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불상 둘레에 키 모양의 광배를 표현했다. 광배 둘레와 연꽃대좌, 입술과 법의 등에 붉은색이 남아 있는데 이는 채색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이 남아있는데 이는 색을 칠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마의태자를 추모하던 신라의 후손이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고, -> 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 수정안 5줄 :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2차 수정

이 불상은 용암사의 서쪽 바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이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대좌 위에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며, 몸 주변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았다. 목에 새겨진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대좌, 입술, 옷 등에 붉은색이 남아있는데 이는 색을 칠했던 흔적으로 보이며, 마애불로서 이렇게 색이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 재위)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며, 불상은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