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옥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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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옥천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1880년경,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의 로베르 신부의 전교를 시작으로 1900년을 전후하여 부이용 신부에 의해 본격적인 전교활동이 진행되었다.

옥천천주교회는 1906년 5월 20일, 본당으로 승격, 공주 본당에서 분리, 옥천읍 이문동(현 문정리) 43번지에 설립되었고, 한국인 사제인 홍병철 루가신부가 초대신부로 부임하였다.

1909년 5월 30일 성당을 죽동(현, 죽향리)으로 신축 이전하였고, 1914년부터 1928년까지 14년간 공소로 격하되어 비룡 및 대전 본당의 관할 하에 있다가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제8대 메리놀 외방선교회 소속의 페티프렌 신부 재임 시 1956년 4월 24일 신축 준공되었으며, 시멘트 벽돌을 사용한 1층 건물로 지붕은 왕대공형식이 변형된 목재 삼각형지붕틀 구조를 하고 있다. 그 후 1966년 종탑부의 부식된 함석마감을 기와로 변경하면서 환기창과 십자가형 첨탑이 철거되었고, 다시 1991년 중축공사로 긴 십자가형으로 평면이 바뀌었으며, 현재 보수공사로 기와지붕마감재를 기존의 함석마감재로 변경하였다.

지방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희소적 가치와 함께 한국전쟁이후 우리나라 종교건축변화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사적 의의를 지닌 귀중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1955년 9월 건립된 가톨릭 성당이다. 옥천의 천주교회는 1906년 5월 옥천읍 이문동(현 문정리)에 처음 설립되었다. 홍병철 루가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였으며, 1909년 홍병철 루가신부는 죽향리 언덕에 한옥으로 새 성당을 건축하여 이전하였다. 1948년 제 7대 김영근 신부는 삼양리에 있었던 일제의 신사터 부지를 매입하여 한옥성당을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후 충북지역은 미국의 메리놀외방전교회(Marykonll Fathers and Brothers)의 전교지역이 되었다. 제 8대 페티프렌 로이(Petipren Roy) 신부는 1955년 9월 지금의 옥천성당을 건축하고, 이듬해 4월 봉헌미사를 올렸다.

옥천성당의 평면은 1991년 개축 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1991년 11월 기존 성당의 뒷벽을 철거하고 트랜셉트(Transept, 翼廊)와 제단 앱스(Apse)부를 증축하면서 길쭉했던 장방형의 평면이 라틴십자가(Latin Cross) 모습으로 변하였다. 2008년에 첨탑의 기와지붕을 함석으로 바꾸고 중앙의 큰 십자가 주변에 작은 십자가를 세우는 등 1955년 건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옥천성당은 한국전쟁 이후 가톨릭 종교건축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1차 수정

옥천성당은 1955년에 건립된 가톨릭 성당이다.

옥천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900년 경이다. 이후 신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1906년 옥천읍 이문동(지금의 문정리)에 본당이 처음 설립되었으며, 홍병철 루카 신부(1874~1913)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로이 페티프렌 신부(Roy Petipren, 1893~1977)가 옥천 지역에 제8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현재의 서양식 성당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1955년 9월에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이듬해 4월 봉헌미사를 올렸다. 당시 이 성당은 옥천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었다. 1991년에는 장방형이었던 성당을 긴 십자가형으로 증축하였다. 종탑에는 1955년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이 걸려 있는데, 청아하게 울리는 아름다운 종소리로 명성이 높다.

옥천성당은 1950년대에 충청북도 지역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 건축물이며, 교회 건축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용어 사용이 적절함
    • 문화재 건축적 가치부분에서 기존 문안에 작성된 내용을 참고하여 기술될 필요가 있음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전반적으로 건축문화재로서 지니고 있는 특성에 대하여 좀더 소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옥천성당 실측보고서”(2006년)을 참조하여 재작성하기 바랍니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명성’이라는 표현은 사람에게 쓰는 말인데, 종소리가 명성이 높다는 표현은 적절치 못해 보입니다. ‘유명하다’정도가 어떨까요?

2차 수정

옥천성당은 1955년에 건립된 가톨릭 성당이다.

옥천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900년 경이다. 이후 신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1906년 옥천읍 이문동(지금의 문정리)에 본당이 처음 설립되었으며, 홍병철 루카 신부(1874~1913)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로이 페티프렌 신부(Roy Petipren, 1893~1977)가 옥천 지역에 제8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현재의 서양식 성당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1955년 9월에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이듬해 4월 봉헌미사를 올렸다. 당시 이 성당은 옥천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었다. 1991년에는 장방형이었던 성당을 긴 십자가형으로 증축하였다. 종탑에는 1955년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이 걸려 있는데, 청아하게 울리는 아름다운 종소리로 유명하다.

옥천성당은 1950년대에 충청북도 지역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 건축물이며, 교회 건축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