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오미동 도림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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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2016 국문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과 그 자제 8형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인 추원사(追遠祠)의 부속 강당이다. 강당은 순조(純祖) 5년(1805)에 세워졌다.

조선 후기 건물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지붕의 구조가 특이하다. 이러한 지붕은 향교나 명륜당, 서원의 강당에 간혹 사용되기도 하였다.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일반적인 사당의 격식을 따르고 있다.

2021 국문

초안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학자 김대현(金大賢, 1553~1602)과 그의 여덟 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추원사(追遠祠)의 부속 강당이다. 사당은 순조 5년(1805)에 세워졌고, 추원사는 이듬해에 세워졌다.

강당 건물은 중앙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을 직각으로 교차해 H자형으로 구성하는 특이한 구조로 만들었다. 이러한 형태는 학문에 전념하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향교의 명륜당이나 서원의 강당 등 강학 공간에 간혹 사용되었던 것이다.

강당 뒤편에 자리한 추원사는 일반적인 사당의 격식을 따르고 있으며, 담장 밖에는 제사 준비를 위한 전사청(典祀廳)과 관리인이 사용하는 건물인 고직사(庫直舎)가 있다.

김대현은 풍산김씨의 종택인 허백당 종택((虛白堂 宗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84호)을 세우며 가학에 힘썼던 인물이다. 김대현의 맏아들 김봉조(金奉祖, 1572~1630)를 포함한 그의 여덟 아들은 모두 소과(小科)에 해당하는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이 중 다섯 명이 대과(大科)에 합격했다. 인조는 이들 형제를 ‘팔련오계(八蓮五桂)‘라고 칭하고, 대과에 합격한 다섯 명을 특별히 ’오미(五美)‘라고 하여 이들의 고향에 ’오미동’이라는 지명을 하사했다고 한다.

  • 김대현과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 요약 혹은 삭제 여부 검토 필요함.

1차 수정

도림강당은 조선시대의 학자 김대현(金大賢, 1553~1602)과 여덟 아들의 위패를 모신 추원사(追遠祠)의 부속 강당으로 순조 5년(1805)에 세워졌다.

김대현은 성리학의 대가인 성혼(成渾, 1535~1598)에게 수학하였고, 선조 15년(158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고향에서 향병을 모아 민심을 수습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대현에게는 아홉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여덟째 아들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고, 나머지 8형제가 모두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시험인 소과(小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그중 다섯 명이 대과(大科)에 합격하자 인조는 이들의 고향에 ‘오미’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강당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대청과 온돌방의 지붕을 직각으로 연결하여 ‘공(工)’자형을 이루는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붕은 학문에 전념하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향교의 명륜당이나 서원의 강당 등 강학 공간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강당 오른쪽에 있는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사당의 일반적인 건축적 양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