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어은정 및 재사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로 후능참봉(厚陵參奉)을 지낸 어은(漁隱) 이용(李容)이 조선 선조(宣祖) 3년(1570)에 지었다.
어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사랑방과는 별도의 정자이며 2칸의 온돌방과 4칸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6칸의 ‘口’자형 구조이다. 부속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와룡면 도곡동에서 이 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현재 정자에는 명호서원의 현판이 걸려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어은(漁隱) 이용(李容)이 지은 정자와 재사이다. 재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을 말한다.
1570년(선조 3)에 건립하였다. 본래 월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와룡면 도곡동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이용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로서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다.
어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각이 진 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2칸의 온돌방과 4칸의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정자에는 철폐된 명호서원(明湖書院)의 현판이 걸려 있다.
옆에 있는 재사는 각이 4개의 진 기둥을 쓰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6칸의 ㅁ자형건물이다. 부속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1차 수정
어은정은 고성이씨 가문의 이용(李容)이 선조 3년(1570)에 지은 정자이고, 재사는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원래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1974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용은 고성이씨 가운데 안동에 처음 들어온 이증(李增, 1419~1480)의 증손자이고, 반구정을 지은 이굉(李肱)의 아들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였으며 후릉참봉(厚陵參奉)을 지냈다. 어은정은 이용의 호를 따서 이름 지어졌는데, 강호에 은거하며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살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어은정, ㅁ자형 구조의 재사, 부속건물 1동이 있다. 어은정 정면에는 명호서원(明湖書院)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명호서원은 이증의 아버지인 이원(李原, 1368~1429)과 이증의 손자인 이주(李冑, 1468~1504)를 기리기 위해 정조 14년(1790)에 창건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