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양사언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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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조선 전기 문신 · 서예가 양사언(1517~1586)의 묘이다. 묘 앞에 연화문이 조각된 묘비가 있는데, 조경이 비명을 지었다.

1546년(명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삼등현감 평창군수 강릉부사 함흥부윤 등을 역임했다. 회양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을 자주 방문하여 금강산 유람기를 쓰고, 만폭동 바위에는‘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이란 글씨를 남겼다. 안변도호부사 재임 시 지릉 화재사건으로 유배되었는데, 2년 후 유배에서 돌아오는 길에 병사했다. 운명 직전 날 비(飛)자를 크게 써놓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시조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도 유명하다. 시집으로 봉래시집이 있다. 초서와 큰 글자를 잘 쓴 것으로 조선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수정

조선 전기의 문신 · 서예가 양사언(楊士彦, 1517~1586)의 묘다.

양사언은 명종 1년(1546) 과거에 급제한 뒤 강릉부사·함흥부윤 등을 역임했다. 회양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을 자주 방문하여 금강산 유람기를 썼고, 만폭동 바위에도 글씨를 남겼다. 목민관 재임 시 각 지역마다 글솜씨를 발휘하여 비문을 지었는데, 특히 포천 영평천 변의 금수정에는 양사언과 관련한 많은 암각문이 전한다. 안변도호부사 재임 시 지릉(智陵: 이성계 증조부의 묘) 화재사건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 돌아오는 길에 병사했다.

그가 지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초서를 잘 써서 안평 대군(安平大君), 김구(金九),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묘역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한 묘비가 있고, 상석·향로석·동자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조성되어 있다. 묘소 바로 아래쪽에는 그의 부인 음성박씨와 간성이씨의 합장묘를 따로 조성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