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5.79m이다. 2중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일반형 석탑이다. 절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절 이름 또한 알 수 없다.
하층기단은 지대석(地臺石), 중석(中石), 덮개돌[甲石]을 모두 여러 개의 돌로 짜놓았다. 중석에는 모서리 기둥이 있고 각 면을 안기둥 2줄로 3분한 다음, 각각 창 모양의 안상(眼像)을 조각하였다. 이러한 안상 장식은 흔치 않은 사례이다. 상층기단 덮개돌의 전각과 반각은 매우 특이한 양식이며, 각 모서리에는 풍령공(風鈴孔)이 남아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몸돌은 기단이나 지붕돌에 비해 비례적으로 작고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형이 새겨져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남아 있다. 지붕돌이 넓어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동 삼층석탑’이라고 한 것은 문화재 지정 당시 이 곳이 옥동이었기 때문이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부분적으로 기교에 초점을 맞춘 특징을 보인다. 탑의 1층 면에는 네모난 창문 모양의 문비를 새겼다. 탑의 몸체는 높이를 낮추고 탑의 지붕 처마를 길고 넓게 설정하여 탑이 전체적으로 가볍게 상승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전체적인 안정감과 통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8세기 삼층석탑의 양식에서 벗어나, 세부적인 장식에 치중하는 9세기 이후 지방 양식을 보이는 대표적인 석탑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 석탑이 위치한 지역은 오래전부터 민가가 들어서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 석탑이 속했던 사찰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는 원래 위치에서 50m를 이동하였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 위치한 지역은 오래전부터 민가가 들어서서 사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며, 어느 사찰에 속했던 석탑인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1층 몸돌의 한 면에는 네모난 문 모양을 새겼는데, 이는 탑 안에 부처의 유골을 모신 공간이 있음을 상징한다. 탑의 몸체는 높이를 낮추고 탑의 지붕 처마를 길고 넓게 설정하여 탑이 전체적으로 가볍게 상승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전체적인 안정감과 통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8세기 삼층석탑의 양식에서 벗어나, 세부적인 장식에 치중하는 9세기 이후 지방 양식을 보이는 대표적인 석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