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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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진사(進士) 이민적(李敏迪, 1702~1763)이 학문을 닦기 위해 마련한 정자이다. 순조 때 용눌재 이한오가 노모를 모시고 거처하기도 하였다. 정자 앞에 위치한 삼신선(三神仙)을 상징하는 3개의 인공연못이 정자와 잘 어울린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락집이다. 일반적으로 방 앞쪽에 퇴칸을 두는 경우에는 방보다 작게 하는데 여기서는 같은 칸수로 해서 3칸 마루를 배치하였다. 사면에 난간을 둘러서 연못을 바라보기에 적당하도록 배려하였다.

건립 당시의 형태가 잘 남아 있으며 특히 연못과 정자의 구성은 조경미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체화정은 1761년 이민적(李敏迪, 1702~1763)이 지은 정자이다. 체화는 아가위나무 꽃을 말하는데, 형제의 우애와 화목을 상징한다. 이민적은 만년에 큰형 이민정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

체화정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누정이다. 정면의 3칸은 똑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러한 배치는 비대칭 구조가 일반적인 보통의 누정과 다른 독특한 구조이다. 앞의 3칸은 대청으로, 뒤의 3칸은 온돌방과 다락방으로 조성하였다. 가운데 온돌방의 창호에는 ‘눈꼽재기창’이라는 작은 창호를 하나 더 냈으며, 양 끝에 있는 2짝의 창호는 가운데 창호 2짝과 포갠 후 들어 올려 전면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러한 창호구조 역시 다른 누정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양식이다.

체화정 앞에는 네모난 연못을 팠으며, 연못 가운데에는 도교의 삼신산인 방장·봉래·영주를 상징하는 세 개의 둥근 섬을 조성했다. 이 같은 형태를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이라 한다.

1차 수정

체화정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민적(李敏迪, 1702~1763)이 1761년에 지은 정자이다. 체화는 아가위나무 꽃을 말하며, 한 데 붙어 꽃피는 모습이 형제의 우애와 화목을 상징한다. 이민적은 만년에 큰형 이민정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옆에 마루방이 있고, 앞쪽에는 툇마루를 내고 난간을 둘렀다. 온돌방과 양쪽 마루방 사이에는 들문을 설치해서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고, 가운데 온돌방의 문을 들어 올리면 전면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그리고 온돌방 문 가운데에는 ‘눈꼽째기창’이라는 작은 창을 더 내서 문을 열지 않아도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하였다.

정면에 걸린 현판은 사도세자의 스승이었던 안동 출신의 학자 유정원(柳正源, 1703~1761)의 글씨이다. 정자 안에는 ‘담락재(湛樂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조선 최고의 서화가 중 한 명인 김홍도(金弘道, 1745~?)가 쓴 것이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해야 부모에게 참된 도리를 다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체화정 앞에는 네모난 연못을 팠으며, 연못 가운데에는 세 개의 둥근 섬을 조성하였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을 나타내는 것이며, 세 섬은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 방장·봉래·영주)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