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용수사 금호비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비석은 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수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규모는 높이 131cm, 가로 45cm, 세로 17cm로 앞면에 34자, 오른쪽 옆면에 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석의 명문은 ‘이 산은 다만 제단과 옛 절 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산 전체를 영세토록 금지하여 보호할 일이다. 일영(日營)이 제목을 짓고. 신해(辛亥) 10월에 세운다.’라고 되어 있다.
전체의 모양이 잘 남아 있고 그 내용 또한 뚜렷하여 용수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용수사가 있던 용두산에 대한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를 담은 비석이다.
용수사는 고려시대인 1146년에 경상북도 봉화에 있던 각화사(覺華寺) 주지인 성원(誠源)이 암자(庵子)를 지으면서 세워졌다. 1896년에 불타버린 뒤 다시 지어졌다. 금호비는 용수사를 다시 짓기 위한 목재보관소 옆에서 다른 장대석(長臺石) 등과 함께 출토되었다.
높이 131㎝, 가로 45㎝, 세로 17㎝의 크기이다. 앞면에 34자, 오른쪽 옆면에 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옆면의 글은 비석(碑石)을 세운 이후에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의 명문은 ‘이 산은 다만 제단과 옛 절 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산 전체를 영세토록 금지하여 보호할 일이다. 일영(日營)이 제목을 짓고. 신해(辛亥) 10월에 세운다.’라고 되어 있다. 중대한 설이란 풍수와 관련된 설로 생각된다. 글을 지은 사람은 일영(日營)으로 되어 있고, 비를 세운 연대는 신해년 10월이라 되어 있으나 신해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전체의 모양이 잘 남아 있고 그 내용 또한 뚜렷하여 용수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1차 수정
용수사 금호비는 용수사가 있던 용두산에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를 세운 연대는 신해년 10월이라 되어 있으나 신해년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원래 용수사 뒷산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131㎝, 가로 45㎝, 세로 17㎝이며, 앞면에 34자, 오른쪽 옆면에 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옆면의 글은 비석을 세운 이후에 추가로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의 내용은 “이 산에는 제단이나 옛 절뿐만 아니라 영역 안에 중대한 설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산 안에서의 모든 출입을 금지하고 보호하도록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대한 설이란 풍수와 관련된 설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