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예안 동간재고택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조선 헌종(憲宗) 10년(1844)에 건립된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口’자형으로 이 지방의 전형적인 살림집의 모습이다. 사랑채는 안채와 분리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사랑채의 구조는 대청 위주인 경우와는 달리 온돌방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5년에 이 곳으로 옮겼다.
수정 국문
초고
조선 헌종(憲宗, 재위 1834~1849) 10년(1844)에 건립된 고택이다. 원래는 평산 신씨가 지은 건물인데 1940년에 현재의 소유자가 집을 사서 자기의 아버지 호를 따 ‘동간재’라 하였다.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 때문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완전 ‘口’자형이고, 사랑채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이다.
안채의 건물의 구조 양식은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간략한 민도리 형식의 홑처마 서산각지붕 집이다. 서산각지붕은 ‘口’자형 집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정면의 지붕의 좌우측에 삼각형의 합각벽이 보이도록 한 형식이다. 사랑채의 건물의 구조 양식은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모두 네모기둥을 세운 간략한 민도리 형식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초고 수정
이 집은 조선 헌종(憲宗, 재위 1834~1849) 10년(1844)에 지어진 고택이다. 평산신씨가 처음 지은 것을 1940년대에 이직호(李直鎬)가 매입한 후 자기 아버지의 호를 따 ‘동간재(東澗齋)’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집은 ‘ㅁ’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안채는 이 지방의 전형적인 살림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중앙의 안대청을 기준으로 왼쪽에 안방이 있고, 그 앞으로 광이 딸린 부엌이 뻗어 좌익사를 이루었다. 우익사에는 온돌방과 고방, 온돌방, 마루방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왼편의 중문을 들어서도 안채 내부가 직접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벽이 시설되어 있는 폐쇄적인 구조이다.
겹집 형태로 지어진 사랑채는 가운데에 큰사랑방을 두고 왼쪽에 마루방을 두었으며, 두 공간의 앞에는 대청을 냈다. 오른쪽에는 작은 사랑방과 반 칸의 온돌방을 앞뒤로 배치하고, 툇마루를 시설했다. 건물 좌우 끝에는 난간을 덧달았다.
1차 수정
동간재고택은 조선 헌종 10년(1844)에 지어졌다. 원래 평산신씨가 지어 살았는데, 1940년대에 현 소유주가 매입한 후 아버지의 호를 따 ‘동간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안면 동부동에 있던 것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1975년 지금 위치로 옮겼다.
집은 ‘ㅁ’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이 있고, 안방 앞으로 광이 딸린 부엌이 뻗어 좌익사를 이루었다. 우익사에는 온돌방, 고방, 온돌방, 마루방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안동 지방의 전형적인 살림집의 모습이다.
일반적인 사랑채는 대청을 중앙에 두는데, 이 집의 사랑채는 온돌방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이하다. 가운데에 큰사랑방을 두고 왼쪽에 마루방을 두었으며, 두 공간의 앞에는 대청을 냈다. 오른쪽에는 작은 사랑방과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두었다. 건물 좌우 끝에는 난간을 덧달았다.